성도 간증
나의 아버지는 1931년생으로 올해 아흔넷이시다. 어려서는 서당에 다니며 한자를 익혔고 초등학교 때에는 일본어를 배워야 했다. 당시에 다들 그랬듯이, 6.25 전쟁으로 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을 겪은 아버지는 더 나아질 앞날에 기대를 걸며 열심히 사셨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딸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동네 교회에 처음 출석하셨다. 아버지는 그렇게 종교 생활을 시작하셨지만 진정한 안식과 평안을 얻지 못했다. 교회 건물을 조카에게 대물림하려는 담임 목사에게 실망해, 결국 교회를 옮기셨다. 새로 찾아간 교회는 사람들의 친목에 더 관심을 두는 곳으로, 참된 신앙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가치관이 비슷한 친구들을 만나 세상사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음에 만족하셨다. 하지만 담임 목사의 재무적 비리가 불거지면서 이전에 겪은 절망에 다시 휩싸였다. 목사에게 받은 불신으로 신앙에 대한 모든 기대감을 내려놓은 아버지는 오로지 교회 친구들과의 우정만 중시하셨다.
그런 아버지에게 딸네 가족이 다니는 교회는 뭔가 달라 보였다. 딸이 말하는 목사님의 삶은 아버지가 그동안 보아온 것들과 정반대였다. 그러던 중 예기치 못한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균열 가득한 교회들을 하나둘 가차없이 쓰러뜨렸고, 아버지가 다니던 교회도 해체 위기를 맞았다.
이를 계기로, 부모님이 우리 교회에 옮겨 오셨다. 아버지에게는 주일예배 후 손녀들과 같이 먹는 점심이 소소한 기쁨이었다. 목사님 말씀이 옳고 좋았지만, 아버지 마음에 그대로 믿어지진 않았다.
“죽어서 어디로 갈지는 가 봐야 알지.” 하시며 자신의 신념과 하나님의 말씀 사이에 엉거주춤 서 계셨다. 그럼에도 박옥수 목사님은 신뢰했다.
“저분은 진짜 목사님이다. 내가 보아 온 목사들과는 다르다.” 일부러 묻지 않아도 먼저 말씀하셨다. 그래서 내가 “죄가 있으세요, 없으세요?”라고 물으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을 멈추셨다.
‘만약에 아버지가 하늘나라에 못 가신다면….’ 아찔했다. 아버지의 구원을 놓고 기도했고, 한마디라도 더 복음을 전하려고 애썼다. 수양회에 가서도 여러 목사님과 신앙 상담할 자리를 만들었으나, “저 목사님이 예전에 지은 죄를 처음 보는 나한테 왜 얘기하시는지 모르겠다.”며 일축하셨다. 이런 아버지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특히 요즘은 식사 후에 “뭘 드셨어요?” 물으면 “내가 밥을 먹었냐?” 되물으실 만큼 기억력이 떨어지고 있어 더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를 앞둔 주일 예배 때 목사님의 말씀이 내 귀를 뚫고 들어왔다. “가족이 아프거나 병들었을 때 우리 가까이에 계신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세요.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역사하십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도 걱정만 하지 말고 기도하세요. 그게 힘들면 나한테 전화해서 기도를 부탁하세요.”
‘그래, 목사님께 부탁을 드리자.’
다음날, 목사님을 찾아가 아버지에 대해 말씀을 드렸다.
“목사님, 아버지는 구원이 정말 가능한 건지 모르겠다고 하세요.”
“그렇다고 가만히 있어서 되는 게 아니고 조금씩 조금씩 해나가야 해요. ‘내가 구원을 받으니까 이런 게 좋더라. 그때부터 하나님이 내 속에서 역사하시더라. 그리고 복음을 전하니까 구원받은 사람들도 일어나더라. 또 하늘나라 갈 때에도 기쁘게 죽더라. 어르신도 기쁨으로 죽음을 맞으실 수 있다. 세상에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어떻게 죄 사함을 받는지 알려 드리겠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돼요.”
말미에, 내일 아버지를 모시고 오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성탄 전야 준비로 모두가 즐겁게 바쁜 크리스마스 이브, 아버지는 느린 걸음으로 교회에 도착하셨다.
“어르신, 여기까지 오셔서 감사합니다. 힘이 들긴 해도 매일 조금씩 움직이시는 게 좋습니다. 가만히 누워 있는 것보다 앉았다 일어섰다 하시고, 하루에 한 바퀴씩 방 안을 돌아보세요.”
“예… 그러겠습니다. 목사님도 나이가 팔십이신데… 건강하게 목회를 하시는 게 대단하십니다.”
“어르신, 하나님을 믿으니까 제가 더 젊어집니다. 그 많던 내 죄가 다 씻겨 너무 감사하고요.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죄 때문에 근심하는데, 저는 죽어도 죄가 다 씻어졌으니 기쁘고 평안합니다.”
이렇게 말문을 연 목사님은 간증을 계속 이어가셨다.
“어르신, 나도 옛날에는 남의 집 감도 따먹고 사과 도둑질도 하고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며 성경을 읽어 보니 내가 지은 죄를 예수님이 다 씻어주시고 대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거예요. 성경의 말씀처럼, 내가 받아야 할 벌을 예수님이 대신 받아 돌아가셨으면 내 죄가 씻어진 게 맞습니다. 사람은 죽으면 하늘나라와 지옥 중에 하나를 가야 합니다. 죄가 많으면 지옥으로 가야 하고요.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죽으시면서 죄를 다 씻어주셔서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도록 해놓으셨습니다. 어르신의 죄도 예수님이 다 씻어 놓으셨다는 말입니다.
성경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이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게 됐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도둑질했는데도 나는 깨끗하고, 거짓말했는데도 깨끗합니다. 어떻게요? 예수님이 대신 벌을 받으셨거든요. 어르신의 모든 죄도 예수님이 대신하셨어요. 그래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사시면 소화도 잘되고 힘도 나십니다. 어르신이 아침에 일어나시면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한 마디라도 기도하세요. 주무시기 전에도 감사 기도를 해서 하나님과 친해두세요.”
이어서 목사님은 대구에 아버지를 모시고 살 때 복음을 전해 드린 간증을 자세히 해주셨다. 눈을 지그시 감고 귀기울여 들으시던 아버지가 천천히, 짧게 고백하셨다.
“오늘 목사님의 잠깐 말씀이 제 마음에 오는 게 정말 많습니다.”
목사님도 기뻐하며 기도해주셨다.
“어르신 생애에 크고 좋은 일이 많이 있었지만 예수님으로 죄 사함 받은 복보다 큰 복은 없습니다. 주님,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 어르신의 모든 죄도 사하시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이제 연로하신데 그동안 주님의 은혜로 건강하게 사시다가 영광스런 하늘나라에 가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르신이 먼저 가시면 제가 뒤따라가고 나중에 딸도 뒤따라가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 복을 누리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 머무는 시간 동안에 하나님이 어르신에게 새 힘을 주시고, 마음에 평안을 주시고, 행복한 마음이 늘 자리잡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버지도, 나도 동시에 “아멘”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가 내 손을 꽉 잡으셨다. 메마른 손에 형용할 수 없는 감격과 힘이 솟고 있음을 느꼈다.
그날 이후 며칠이 지났다. 출퇴근길에 부모님 댁을 잠깐씩 들르는데, 아버지의 변화가 예사롭지 않다. 매일 집에 오시는 요양사 선생님이 그 변화를 제일 먼저 알아챈다. 어제보다 잘 드시고, 어제보다 표정이 밝으시다고 했다. 종일 누워 지내던 아버지가 목사님의 말대로 일어나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웃음소리도 커지고 있다.
며칠 전 아버지와 대화하다가, 내가 초등학생 때 짝꿍의 새 지우개를 훔쳤다가 써 보지도 못한 채 끙끙거리다가 남의 집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이야기를 해드렸다. 아버지도 입을 여셨다. 무일푼 고등학생 때 서점에 갔다가 영문법 책이 너무 갖고 싶어서 몰래 가방에 넣어온 적이 있었다며, 오랫동안 마음에 응어리진 이 일을 생전처음 입 밖으로 꺼낸다고 하셨다.
혹여 잊어버리실까 봐 나는 매일 아버지께 묻는다. “언젠가 육신을 벗고 나면 영혼은 어디로 가실 거예요?”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며 소년처럼 웃으시는 아버지. “죄가 있는데 어떻게 하늘나라에 가세요?” 다시 질문하면 양 손으로 X 표를 만들며 “죄, 노No!”라고 단호하게 답하신다.
예전에는 천국이나 의인이라는 단어 앞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는데…. 아버지의 이런 변화를 보며 내가 더 감격스럽고 감사하다. 일주일 사이에 몰라보게 강건해진 아버지는 요즘 내 몸이 왜 이리 가볍고 편안한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사람이 살다가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것은 정해진 이치다. 그날이 언제인지 아무도 미리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에 대해, 예수님에 대해 아버지와 조금씩 대화할 수 있어서 더없이 기쁘고 행복하다.
‘아버지의 구원’이라는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값 없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아버지를 매일매일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주고 계심에 소망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