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 이르는 길_창세기 강해(제26편)

창세기에 나오는 인물들, 사건들에 숨겨진 하늘의 보석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선물이다. 특별히 창세기에는 빛나는 보석들이 무수히 숨겨져 있다. 미국 LA에 있는 ‘Radio Korea’에서 5년 동안 방송된 박옥수 목사의 <창세기 강해>가 이후 여섯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창세기 강해>에서 하늘의 보석들을 하나하나 발견해 가는 동안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빛나고 아름다운 세계가 점점 광활하게 펼쳐진다. 책에 실린 내용들 중 일부를 선정하여 연재한다.
계속해서 바벨탑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창 11:4)
바벨탑의 두 번째 특징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바벨탑을 쌓은 이들의 주장은,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그들의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자는 것입니다.
모든 모임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과 인간적인 방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구약에서 만든 금송아지는 인간적인 생각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들 때, 모세가 시내산 꼭대기에 올라가 40일이 지나도록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으니까 백성들이 ‘우리를 인도하는 신이 없으니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자연히 흩어지려고 하는 그들의 마음을 모을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아론이 만든 금송아지였습니다.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흩어질까봐 두려워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 금송아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열왕기상 13장에서는 여로보암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다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에 가는 것을 막으려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유다로 갈 것 없다. 이 금송아지 앞에 제사를 드리면 된다.” 하여 큰 죄를 짓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구약에서 금송아지를 만든 일들은 대부분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든 자체가 죄라기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흩어지는 것을 면하기 위해 하나님이 아닌 다른 방법을 사용했다는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는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말이 있듯이, 눈에 보이는 부분에는 마음이 쉽게 갑니다.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고, 귀로 들을 수도 없는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고, 그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기울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마음을 기울이려면 우리 의견이나 생각이 전적으로 포기되어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나오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님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지 않고도 나올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끌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벨탑을 폐하신 이유는, 사람들의 마음을 마땅히 하나님을 향하도록 이끌어야 하는데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은 방법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흩어지는 것을 막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성과 대를 쌓고 대 꼭대기를 웅장하고 높게 세웠습니다. 누구든지 그 앞에 오면 ‘굉장한 조각품이다’ 하며 마음이 숙연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방법들로 만들어지는 신앙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에서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하셨고, ‘너를 위하여 아무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나 예수님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마음을 쏟기 쉽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분이기에 우리 마음을 낮추어서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사탄은 그보다 쉬운 방법으로 우리를 유도합니다. 그것은 마치 대상隊商이 사막 길을 가다가 햇볕이 뜨겁게 쬐어 목이 마르고 피곤할 때 신기루가 잘못된 길로 유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막에서 힘들 때 신기루가 나타나서 옆길로 가게 만드는 것처럼,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나는 일에도 잘못된 길이 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는 일은 교회에 가서 찬송하고 “주님, 내 마음에 들어오시옵소서.” 하고 영접 기도를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자신의 무익함과 자신의 노력이 헛됨과 지금까지 해온 신앙생활이 온전치 못한 것을 깨닫고,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는 낮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 앞에 나아왔던 사람들은 거의 다 은혜를 입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마음을 낮추어 자기를 부인하지 못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예수님을 영접하기는커녕 대적하는 위치에 서 있었습니다. 우리가 찾고 찾지만 하나님을 만나지 못할 때, 노력하지만 선하게 되지 않을 때, 그때마다 우리 마음이 점점 낮아지고, 낮은 그 위치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마음을 낮추지 않고 신앙생활을 액세서리 정도로 알기에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가니까, 그들을 신앙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교회에 붙들어두려고 합니다. 이것이 바벨탑을 세운 목적과 같습니다. 어떤 교회는 교인들에게 직분을 주어서 교회에 마음을 쏟게 만듭니다. 어떤 교회는 예배당을 엄숙하고 거룩하게 보이게 합니다. 교회에 나오는 저명한 인물들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교회에 붙들어두려고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것은 대를 쌓고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해서 그것으로 말미암아 흩어짐을 면하고자 했던 바벨탑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훌륭한 교회의 건물이나 성가대 등을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마음으로 가야 합니다. 순수하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에 의해서 교회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교회는 사람들이 적응하기 어려울지 모릅니다. 그럴지라도 참된 교회는 깨끗함을 입고 마음을 낮춘 사람들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 안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나올 때 마음을 꺾지 않고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무익함을 깨닫지 않고 그냥 와서 교회에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과 자기 마음이 다르고, 서로 생각과 방법에 맞지 않으니까 분쟁과 분열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벨탑을 흩으시려고 작정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 중에 간음하는 일이 있었거나 살인하는 일이 있었거나 도둑질하는 일이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악하고 음란하고 추했기 때문에 흩으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이 순수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 아닌 것으로 사람을 모으고 흩어지지 않게 하려고 했기 때문에 흩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서야 할 마음의 위치에 웅장하게 세워진 바벨탑이 서 있었기 때문이며,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가증스럽고 더럽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많은 교회가 사람의 마음을 끌기 위하여 각양각색의 방법을 동원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외의 다른 것에 마음이 끌린다면,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일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교회가 아니라 바벨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참된 교회는 그곳에서 하나님 외에 아무것도 볼 수 없어야 합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거룩함과 자신의 추함을 깨닫고 죄 사함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거듭나는 역사가 있는 교회여야 합니다.
어느 시대나 외형적으로 좋아 보여도 바벨탑 같은 교회가 많고 참된 교회를 찾기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셔야 할 일을 다른 무엇이 하게 대체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의 마음에 오셔서 성도들을 주장해 주시고, 교회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성도들이 인간의 의견을 좇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져 가는 교회가 있다면, 그 교회는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그 교회에 오는 사람들은 분명히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남은 생애가 참으로 하나님과 가까워지기를 바랍니다. 다른 모든 것에 대하여는 눈이 감기고 하나님을 향하여 눈이 뜨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온전함이 여러분에게 임하면 여러분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에 불편함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이가 좋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