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고래

2024년 6월호 기쁜소식 자연에서 배우다_2편

2024-06-15     글 | 박남은(기쁜소식광주교회)

눈에 보이지만 다가갈 수 없는 푸른 하늘만큼이나 넓고 푸르며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는 예나 지금이나 또 다른 미지의 세계이며 동경의 대상이다. 청소년 시절에 읽었던 <해저 2만리>는 나에게 정말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무궁한 상상력을 자극했다. <해저 2만리>는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이 1866년에 쓴 고전 과학소설로, 소설에는 바다 괴생명체로 오해받는 잠수함 ‘노틸러스호’가 나오는데, 아직도 해저 어딘가에 그 잠수함이 가라앉아 있을 것 같았고, 소설 속의 노틸러스호가 아니더라도 ‘니모 선장 같은 천재가 북극해 어느 빙하 밑에 비밀 기지를 만들어 이 세상에 없는 신기한 잠수함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바다의 포유류, 고래

바다는 먹을 것을 주는 어머니 같은 곳이지만,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고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많은 생물들이 사는 미지의 세계였다. 최근에는 작은 어선에도 어군 탐지 레이더가 있어서 바닷속을 보며 낚시를 하거나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첨단 장비의 발달로 바다 생물들에 관한 정보가 점점 늘고 있지만, 1년에 몇 천 킬로미터를 여행하고 인간과 교감이 가능하며 노래를 하는 고래에 관해서는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여전히 많다고 한다.
고래는 포유류로, 수염고래 종류와 이빨고래 종류로 나뉜다. 수염고래 종류는 긴 수염이 달려 있어서 물을 빨아들인 뒤 수염으로 거른 플랑크톤을 먹는다. 이빨고래 종류는 어류나 포유동물을 사냥해서 먹는다. 고래는 가슴지느러미 한 쌍, 등지느러미, 꼬리지느러미를 가지고 있으며, 물 밖에서 숨을 쉬기 위해 등에 분수공이라는 콧구멍이 있다.

혹등고래의 특징

수염고래들은 일반적으로 빠르게 헤엄치며 먹이가 있는 물을 삼킨 뒤 수염으로 걸러내는 방식으로 먹이를 먹는다. 꼬리지느러미가 커서 빠른 속도로 앞으로 헤엄치기 좋은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염고래 종류인 혹등고래는 다른 수염고래류에 비해 가슴지느러미가 매우 커 회전 및 방향 전환이 뛰어나, 이러한 특징을 이용해서 사냥한다. 깊은 바다에서 수면을 향해 회전하며 분수공에서 공기방울을 뿜어내 일명 ‘거품 그물’을 만들어 먹이를 가둔 뒤, 빠르게 돌면서 먹이를 먹는다. 혹등고래가 날렵하고 빠르게 회전할 수 있는 것은 가슴지느러미가 크고 몸에 있는 많은 돌기들이 높은 양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비행기 날개와 유사한 혹등고래의 돌기와 가슴지느러미

사람들은 바다 생물이 물의 저항을 최소화하려면 몸이 유선형이고 표면은 매끈해야 물속에서 지내기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혹등고래는 등과 지느러미에 혹 같은 돌기가 잔뜩 있다. 가슴지느러미 앞쪽에 나 있는 돌기들은 물의 흐름을 방해해 지느러미 표면에 작은 소용돌이가 생긴다. 이 소용돌이는 물이 지느러미에서 떨어지지 않게 눌러준다. 그 결과 지느러미에 가해지는 압력이 증가해 양력이 커져서 거대한 몸집을 날렵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혹등고래의 돌기와 가슴지느러미는 비행기 날개와 유사한 점이 있다. 비행기 날개에는 항상 양력*과 항력*이 발생한다. 날개의 각도가 수평에서 커지는 만큼 양력과 항력이 증가하며, 각도가 과도하게 커지면 항력만 증가하고 양력은 감소한다. 

혹등고래가 움직이는 원리는 항공기의 날개나 블레이드에도 적용되고 있다. 날개 앞부분에 돌기를 사용하여 항공기 중량을 줄이고 연비를 높일 수 있다. 또한 팬 블레이드에 돌기를 추가하면 에너지 효율이 향상된다. 캐나다의 한 환기 장치 제조업체에서는 대형 건물용과 산업용 천장의 팬 제작 시 돌기를 적용하여 생산한다. 그 결과 기존 제품보다 효율이 25% 높고 전력 소비는 20% 적은 것으로 보고되었다. 또한 저속 풍동 시험 장치에서도 날개 모양에 돌기를 추가했을 때 소음이 감소하는 것이 관찰되었다. 풍력 발전기에서도 날개 앞 가장자리에 돌기를 추가하여 에너지 생성을 증가시키고 있다.
거대하고 독특하게만 여겨졌던 혹등고래의 생김새에는 나름의 쓸모가 있었다. 유선형이며 표면이 매끄러운 것이 저항이 적고 높은 효율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우리 생각을 넘어, 혹등고래의 못생긴 혹과 돌기는 고성능 양력 발생 장치였다. 그 돌기에서 사람들은 높은 효율과 저소음의 친환경 장치들을 만드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무분별한 포획, 해양 사고, 환경 문제 등으로 고래의 개체수가 줄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크고 신비로운 생명체인 고래를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