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쥐

2024년 10월호 기쁜소식 자연에서 배우다 6

2024-10-07     글 | 박남은(기쁜소식광주교회)

박쥐에게서 영감 얻은 생활 속 물건들
모든 가족이 직장으로, 학교로 가고 비어 있는 집에 “윙~~” 소리와 함께 청소가 시작된다. 로봇 청소기가 집안 바닥 먼지를 구석구석 빨아들이고, 걸레로 닦는다. 청소를 마친 청소기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먼지를 털어내고 충전을 시작한다. 요즘 가정마다 로봇 청소기가 필수품이 되어가고 있다. 특히 한국은 가전제품을 만드는 기술이 뛰어나서 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는 것뿐만 아니라 물걸레질도 하고, 먼지도 비워내고, 충전도 알아서 하도록 만든 제품이 인기이다. 
로봇 청소기는 진공청소기를 무선으로 만들고 장난감 자동차처럼 모터로 움직이는 구조이다. 그런데 청소기가 이곳저곳을 청소하려면 앞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고 벽이 있으면 되돌아가고, 물건이 있으면 돌아가야 한다. 로봇 청소기는 초음파 센서로 초음파 신호를 발사하고, 이 신호가 장애물에 반사되어 돌아오는 시간을 측정하여 장애물과의 거리를 계산한다. 초음파 센서는 다양한 물질과 표면에서 반사된 신호를 감지할 수 있어서 물체의 질감에 관계없이 장애물을 효과적으로 탐지할 수 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초음파 센서 중의 하나는 자동차의 충돌방지 장치이다. 1990년 초반에 일본의 한 자동차 회사에서 최초로 초음파 주차 보조 시스템을 장착한 자동차를 출시했다. 이 시스템은 차량의 후방에 장애물이 있을 때 운전자가 경고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초음파 센서는 차량의 후방에 장착되어, 차량이 후진할 때 장애물까지의 거리를 측정하여, 장애물과의 거리가 일정 이하로 줄어들면 경고음이나 시각적 신호를 운전자에게 보내 주차 공간의 협소함을 알려준다. 이 시스템의 도입은 차량의 주차 편의성을 크게 향상시키고, 후방 시야가 제한된 상황에서의 안전성을 높이는 데에 기여했다. 
최근에는 스스로 주행할 수 있는 자율 주행 자동차가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과 다양한 센서로 단순히 장애물을 인지하는 것을 넘어서 도로 상황을 인식하고, 주행 경로를 결정하고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런 자율 주행 자동차의 핵심기술에는 인공지능, GPS와 정밀 지도 데이터, 통신 그리고 센서 기술이 있다.

 

박쥐의 특별한 능력과 응용
초음파 센서의 원리는 박쥐에 대한 연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794년 호기심 많은 신부이자 생물학자인 라차로 스팔란차니는 박쥐의 야간 비행에 관심을 가졌다. 대부분의 새는 해가 지면 쉬는데 박쥐는 어둠 속에서 더욱 활개를 치며 날아다닐 뿐만 아니라 아무리 어두워도 장애물을 피해 아무런 어려움 없이 작은 벌레들을 잡아먹을 수 있었다. 스팔란차니는 박쥐의 감각을 하나씩 제거하는 기괴한 실험을 하면서 박쥐가 ‘청각’에 의해서 야간 비행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레이더의 영어 단어인 RADAR는 ‘Radio Detection And Ranging
(무선 탐지 및 거리 측정)’의 줄임말이다. 박쥐가 어두운 곳을 날 때 초음파를 발사해 그 반사음으로 부딪히지 않고 비행하는 것으로부터 힌트를 얻었다. 박쥐가 만들어 내고 듣는 초음파는 고주파의 소리를 사용하고, 레이더는 전자기파를 사용하여 물체를 감지한다. 초음파 센서가 20kHz의 고주파를 발사시켜 반사되어 오는 시간을 측정하여 물체까지의 거리를 계산하는 것처럼 레이더도 마이크로파 범위의 전파를 발사하여 물체에 전파가 돌아오는 시간을 측정하여 항공기의 거리, 속도, 방향을 추정한다. 이런 레이더 기술은 장거리 탐지와 물체 추적에 주로 사용되고, 최근에는 선박, 자동차의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및 충돌 방지 시스템, 기상 레이더 등에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레이더에 잡히지않는 항공기
초음파 센서나 레이더가 발사한 음파나 전자파의 반사음을 통해 물체를 식별하기 때문에 이를 훼파하는 기술 또한 발전하게 되었다.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항공기는 역으로 레이더의 원리를 이용한다. 레이더에서 발사되는 전자파를 다른 방향으로 굴절시켜 반사파가 레이더로 돌아가지 못하게 한다. 록히드 마틴사의 Nighthawk라는 스텔스 항공기가 비밀리에 운용되다가 대중에게 공개되었을 때, 유선형의 날렵하고 매끈한 일반적인 비행기의 모습과 다르게 각진 독특한 모습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또 하나의 스텔스 기술은 레이더의 전자파를 흡수할 수 있는 특수 페인트를 항공기 표면에 도포하는 것이다. 이렇듯 박쥐의 초음파 원리를 이용해서 적기를 탐지할 수 있는 레이더도 만들 수 있고, 레이더를 훼파하는 스텔스 항공기를 만들 수도 있다.

마무리
시력이 매우 좋은 사람도 빛이 없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다. 그래서 어둠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이는 박쥐를 보면서 두려워하여 드라큘라를 상상하여 만들어내고, 몇 년 전 코로나의 주범으로 박쥐가 지목되기도 했다. 인간의 오감을 뛰어넘는 박쥐는 억울하게 사람들의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누명을 쓰기도 했지만, 그 박쥐의 특별한 능력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기술은 우리 삶 속에 많은 편리를 주고 안전을 지켜주는 고마운 제품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박남은 | 공학 박사. 조선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하였으며, 전산유체역학을 이용한 한국형로켓 발사체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졸업 후 한국항공우주산업(주)에서 T-50 전투기 개발과 수리온/LAH 헬리콥터 개발에 참여하였으며, 차세대 회전익기 등을 연구, 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