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고무나무
2024년 11월호 기쁜소식 자연에서 배우다 7
영화에 보면, 헬리콥터가 피격당해서 공중을 뱅글뱅글 돌다가 추락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그러나 실제로는 군용 헬기를 소총으로 격추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조종석과 문에는 방탄판이 있고, 헬리콥터 날개는 총에 맞아 구멍이 생겨도 비행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져 있으며, 헬리콥터의 중요한 부위는 이중화 방호 설계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또 영화에서 자동차나 헬리콥터의 연료통을 총으로 쏘면 쉽게 폭발하는 것처럼 나오지만, 군용 헬기의 연료 탱크 주변은 복합재를 이용해 보호되어 있어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탄성 고무와 같은 재질을 사용하는 연료 탱크는 총알이나 파편의 충격을 흡수하고, 탄환이 뚫고 지나가도 탱크 내부가 연료와 반응해 자동으로 팽창해서 구멍을 메우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러니 영화처럼 되기 어렵다.
군용 헬리콥터의 블래드(주머니형) 탱크의 소재로는 고무나 합성 폴리머가 사용된다. 이러한 재료는 유연성, 강도, 연료와 환경적 열화에 대한 저항성이 뛰어나다. 이렇게 우수한 성능의 연료 탱크를 만들 수 있는 것은 바로 고무와 같은 소재 때문이다.
고무의 특성
고무는 다양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탄성, 내약품성, 내열성, 내한성이 주요 특성이다. 탄성은 늘어나거나 압축된 후 원래 형태로 돌아가는 힘이고, 내약품성은 화학 물질에 노출되었을 때 견디는 힘이다. 내열성은 높은 온도에서도 성능을 유지하는 힘으로, 실리콘 고무는 -50°C에서 250°C까지 견딜 수 있는 뛰어난 내열성을 가지고 있어서 항공, 전자제품, 의료기기 등에 널리 사용된다. 내한성은 낮은 온도에서도 유연성과 성능을 유지하는 힘으로, 자동차의 실링 부품과 전기 케이블의 절연재 등으로 유용하다. 고무는 이러한 특성 덕분에 다양한 산업과 응용 분야에서 필수적인 재료로 사용되고 있다.
자전거와 타이어
최근에는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자전거를 많이 탄다. 자전거를 탈 때 펑크 때문에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자전거 펑크를 막아주는 기술이 있는데, 바로 자전거 타이어에 실런트(밀봉제)를 넣는 것이다. 타이어에 펑크가 발생하면 타이어 내부에 있는 실런트가 바람이 빠지는 공기 압력에 의해 타이어 바깥으로 밀려나가 구멍을 자동으로 밀봉한다. 이러한 타이어는 자체 밀봉이 되기 때문에 타이어 안에 튜브가 필요 없어서 ‘튜블리스’라고 한다. 튜브와 타이어로 구성된 기존의 타이어에 비해 튜블리스 타이어는 훨씬 가벼운 데다 펑크가 예방되기 때문에 매우 편리하고 유용하다.
이런 원리에 의하면 자동차 타이어에도 실런트가 적용되면 펑크가 났을 때 사고를 예방해줄 것으로 생각되지만, 일반적으로 자동차 타이어는 손상 부위가 크기 때문에 실런트가 효과적이지 못하다. 또, 타이어의 압력이 자전거에 비해 낮아 실런트가 구멍에 도달하기도 어렵다. 이런 이유로 자동차에는 실런트가 일반적으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
고무나무와 플라스틱
헬리콥터의 연료를 담는 블래더 탱크나 자전거의 실런트는 유연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물건을 만들 때 대부분 딱딱한 소재를 사용하지만, 경우에 따라 유연하면서 모양이 변할 수 있는 소재가 필요하다. 고무 재질의 탱크나 실런트 같은 성질을 가진 소재가 필요할 때가 많다. 이처럼 요긴하게 사용되는 고무 성분은 고무나무에서 채취한다. 고무나무 수액(라텍스)은 타이어나 장갑 등 많은 부분에 사용되며, 우리가 쓰는 라텍스 침대의 재료도 고무나무에서 채취한 것이다.
18세기 중반에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새로운 소재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기계를 이용해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더 가볍고 내구성이 강한 소재가 필요해졌다. 그리고 고무나무 수액 같은 천연 소재가 고갈될 것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대체 소재를 개발하려는 노력이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이루어졌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는 화학 산업이 발전해, 합성 고분자화합물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 결과로 1907년에 합성 플라스틱이 개발되었고, 플라스틱의 상업적인 사용이 시작되었다.
이 기술은 제1, 2차 세계대전 중에 군사용 물품과 장비의 생산에 널리 사용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플라스틱은 일상용품으로 발전하여 가정용 전자기기, 자동차 등 다양한 분야로 사용처가 확대되었다. 플라스틱은 우리 생활과 산업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소재로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플라스틱 또는 플라스틱 화합물을 배제하고는 생활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아주 유용한 플라스틱은 고무나무 수액에서 시작되었다. 고무나무의 수액이 고갈되자 사람들은 인조 고무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 기술이 발전해 플라스틱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지금은 우리 주위 어디에서나 플라스틱 제품을 볼 수 있을 만큼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렇듯 자연은 우리 삶에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는 출발점이 된다. 우리는 필요한 것을 자연에서 직접 얻기도 하고, 자연에서 지혜를 얻어 유용한 여러 가지 것들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박남은 | 공학 박사. 조선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하였으며, 전산유체역학을 이용한 한국형로켓 발사체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졸업 후 한국항공우주산업(주)에서 T-50 전투기 개발과 수리온/LAH 헬리콥터 개발에 참여하였으며, 차세대 회전익기 등을 연구, 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