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9년 만에 돌아와 보니 이런 교회가 또 있을까 싶다
[라이프] 9년 만에 돌아와 보니 이런 교회가 또 있을까 싶다
  • 글 | 문숙희(기쁜소식수원교회)
  • 승인 2024.09.11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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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호 기쁜소식
보배와 질그릇

2009년에 구원받고 3년 뒤 교회를 떠났다가 9년 만에 돌아왔다. 돌아온 탕자에게 모든 좋은 것으로 은혜를 입혀주신 아버지처럼, 교회로 돌아온 내게 하나님은 가족이 구원받는 큰 은혜를 베풀어주셨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죽기 전에 한꺼번에 회개하자
나는 비교적 순탄한 삶을 살다가 이혼하며 어려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무렵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2009년에 구원받기 전까지 인생의 어려운 과정 속에서도 하나님 한 분을 의지하며 35년간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예수님을 신랑으로 만났다고 생각하고 전심을 다해 주님을 섬겼다. 
그렇게 십수 년이 흘렀다. 이혼 후 홀로서기를 하고 생활이 안정되었을 무렵이었다. 그날도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데, 매일 똑같은 회개기도를 하는 것에 갑자기 회의가 들었다. 평소에 내가 둘째 아들에게 제일 듣기 싫은 말이 있었다. 아이가 말썽을 부려 야단을 치면 아들은 “엄마, 다시는 안 그럴게요. 용서해 주세요.”라고 한다. 내가 아들에게 “그래, 그렇게 하지 마.”라고 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아들이 잘못해서 야단을 치면 “엄마, 다시는 안 그럴게요. 용서해 주세요. 미안해요. 죄송해요.”라고 한다. 아들은 매번 잘못하고 똑같은 말로 용서를 빌었다. 나도 그 말이 제일 듣기 싫은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볼 때도 그러시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나님, 제가 이런저런 잘못을 했습니다. 이 죄를 용서해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면, 하나님이 내 죄를 용서해 주시겠지만 매번 같은 죄로 또 회개기도하면 짜증이 나시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똑같은 잘못을 매일 회개할 바에는 죽기 전에 한꺼번에 회개하자’라고 생각했다. 

내가 강도 만난 자라고?
나는 서울의 모 헬스케어회사에서 고객을 상담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한 청년 고객이 찾아왔다. 너무 곤고해 보여서 그에게 하나님을 소개해 주고 싶었다. “아플 때 누군가 함께 손을 잡고 가는 사람이 있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한번 믿어보시면 어떠세요?” 
어느 날은 상담을 마치고 커피숍에서 만나 이야기하는데 그 청년이 냅킨에 그림을 그려서 내게 보여주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강도 만난 자, 레위인, 제사장, 사마리아인 등을 그려놓고 “이 사람들 중에 선생님은 어느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었다.
당연히 나는 나 자신이 선한 사마리아인이라고 했다.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선도 베풀고 구제도 하고 봉사도 해야 하는 거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러자 청년이 누가복음 15장을 펴고 내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거반 죽은, 강도 만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예수님 한 분이십니다. 우리가 강도 만난 자가 되어야 선한 사마리아인인 예수님의 은혜로 주막인 성전 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30년 넘게 교회에 다녔어도 이런 해석은 처음 들었다. 우리는 항상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서 강도 만난 자를 구제해주고 선한 일을 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청년의 말이 참으로 희한한 이야기 같았지만, 틀린 말은 아닌 거 같았다. 그래도 믿어지지는 않았다. 그는 늦은 시간까지 성경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때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들었던 이야기와 달라서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다 일리가 있고 맞는 이야기 같았고 재미있었다. 그를 전도하려다가 되려 내가 전도를 받은 날이었다.
“성경세미나에 오세요”
나는 전에 암에 걸렸다가 나은 적이 있었다. 나는 ‘하나님이 나를 훈련하시려고 이 병을 허락하셨어. 나는 이 병으로 죽지 않아. 이길 수 있어’라고 생각했다. 병의 원인을 치료하는 분야에 관심을 갖고 공부했고 지금 25년째 건강 상담 일을 하고 있다. 좋은 제품을 먹는 것도 좋지만 ‘이 병에서 나을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해 왔다. 그 청년을 만났을 때에도 그 부분을 이야기했다. 
어느 날 상담 받던 청년이 박옥수 목사님도 만나 건강 상담도 해드리고 목사님 말씀도 들으시면 좋겠다고 하며, 당시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리는 성경세미나를 소개했다. 기성 교회에서 이단시하던 목사님 이름이라 거부감이 생겼다. 그러자 청년은 “선생님은 고객이 신부님이거나 스님이면 안 만나시나요?”라고 하는데, 듣고 보니 그 말도 맞았다.
그렇게 나는 2009년 잠실실내체육관에서 박옥수 목사님을 처음 만났다. 체육관에 가서 무작정 박옥수 목사님을 만나고 싶어서 왔다고 하자 서적판매대에 서 있던 한 여자 분(현재 기쁜소식수원교회 김나경 집사)이 나를 안내해주었다. 대기실에 들어가자 박 목사님이 차를 타고 계셨고, 내게 차 한 잔을 할지 물어보셨다. 그 상황이 너무 낯설었다. 나는 직업상 대형 교회의 대표 목사님들을 고객으로 만나고 있을 때였는데, 그동안 만났던 목사님들에게서는 전혀 볼 수 없던 모습이었다. 손수 차를 타는 목사님도 없었을 뿐 아니라 손님을 직접 맞이하는 목사님도 없었다. 너무 이상하면서도 신선했다. 그날은 내가 하고 싶은 건강 이야기만 했다. 돌아가려고 하자 목사님이 ‘시간이 되면 다음날 성경세미나에 오라’고 하셨다. 목사님에게 직접 차 대접을 받은 것이 감사해서 참석하겠다고 약속했다. 

성경세미나에 처음 참석한 날, 죄 사함을 받았다
내가 성경세미나에 참석한 날, 목사님은 히브리서 10장 10~18절 말씀으로 설교하셨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박 목사님이 히브리서 10장 말씀을 한 구절 한 구절 설명하실 때 내 마음을 강하게 두드렸다. 내 모습과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은 이미 예수님을 통해 우리 죄를 다 씻으시고 우리를 거룩하고 의롭다고 하셨다. 말씀에서는 예수님이 한 제물이 되어 돌아가심으로 내가 영원히 온전케 되었다고 하셨다. 
로마서 3장 23, 24절 말씀도 놀라웠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30년을 교회에 다녔지만, 나는 내가 방언을 해야 하고 내가 은사를 받아야 하고 내가 기도해서 하나님의 뜻을 받아야 하는 등 표적을 바랐고, 그게 신앙이라고 믿고 살았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전부 내가 무언가를 해서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는 생각 안에서 신앙생활을 해왔던 모습이 비추어졌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세상 죄를 씻어서 우리를 의롭다고 하신 말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설교가 끝나갈 때 박 목사님이 “오늘 말씀을 듣고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일어나보세요.”라고 하셨다. 나도 벌떡 일어났다. 정말 기쁘고 감사했다.

세상에 나가도 괜찮겠지
그 뒤로 주일마다 기쁜소식강남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박 목사님은 내가 늘 고객에게 말했던 ‘마음에서 암을 이기면 몸의 암도 이길 수 있다’는 말씀을 자주 설교하셨다. 동지를 만난 것처럼 좋았다. 교회에 가는 것이 정말 즐거웠다. 주일예배 후에 자매님들이 끓여주시는 국수도 너무 맛있어서 주일예배에 가는 이유에 한몫을 했다. 
그동안 내가 다녔던 교회에서 내가 보이지 않자 교인들이 우리집에 찾아왔다. 우리집 근처에 사람들이 이단시하는 교회가 있었는데 내가 거기에 빠진 거 아니냐며 온 거였다. 내가 박옥수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구원받았다고 하자 큰일난다고 했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거의 매일 우리 집에 찾아왔다. 특히 시댁 쪽에 기성 교회에서 목회하는 분들이 많다 보니 핍박이 심했다. 그런 중에도 나는 예수님이 나의 죄를 다 씻어 의롭게 된 사실이 너무 분명했기에 행복하게 교회에 다녔다. 
3년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내 주변의 지인들이 나를 멀리하고 따돌리더니 뒤에서 모함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업에도 영향을 주었다. 형편이 어려워지자 더는 교회에 나가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목사님들과 아주 여러 번 상담도 받고 성경공부도 했지만 내 생각이 점점 더 커져갔다. ‘이렇게 어려움을 겪으면서까지 교회에 가긴 어렵겠다. 나는 구원받았으니까 꼭 교회에 가지 않고 신앙생활 해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다. 

9년 만에 교회로 돌아가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말씀을 듣고 신앙생활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나 교회를 떠나자 내 삶은 신앙생활과는 멀어졌다. 나는 딸만 여섯인 집의 맏딸로 모든 부분에 우등생으로 살았다. 뭐든 잘해야 하고 반듯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크게 지배하고 있었다. 직책이 높아질수록 더 권위적인 사람이 되었고, 신앙과는 상관없이 일에 중독되었다. 
2020년 초,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했다. 사업에도 타격을 입었고, 일상생활도 발이 묶이고, 모든 게 정체되었다. 마음이 굉장히 곤고하고 불안했다. ‘다시 신앙생활을 해야겠다. 교회에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쁜소식선교회로 돌아가기는 부끄러웠다. 집 근처에 있는 교회에서 부흥회를 한다고 하기에 참석했다. 집회 강사 목사님은 열심히 주를 섬기고 선을 쌓고 회개기도로 죄를 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음이 굉장히 불편했다. 더 가관인 것은, 목사님이 교인들의 기도 제목이 적힌 헌금봉투를 들고 기도하는 시간이었는데,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적힌 기도 봉투를 들고는 “이거 가지고 아들을 달라고 하면 하나님이 주시겠어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돈이 부족하다는 말이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더는 그 교회에 가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기쁜소식선교회 목사님들의 말씀을 듣기 시작했다. ‘맞아. 이 말씀이 진리지.’ 내게 가끔씩 안부 문자를 보내던, 당시 구역 식구인 김나경 자매에게 문자가 왔다.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했다. 교회를 떠난 지 9년이 지나서 교회로 돌아오게 되었다. 

교회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어찌할 뻔했을까?
2022년 가을, 우리집은 인천인데 김나경 자매의 손에 이끌려 기쁜소식수원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전에 기쁜소식강남교회에 다니던 김 자매도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갔다가 수원으로 이사왔다고 했다. 누가복음 15장에서 탕자가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온갖 좋은 것으로 입히고 먹이고 즐거워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내게도 기쁨과 평안을 주셨다. 당시 박영준 목사님이 시무하셨는데, 목사님도 교회를 떠났다가 돌아왔다고 하시며 돌아온 탕자 말씀을 전하시는데 공감이 되어 더 크게 감사했다. 이제는 내 생각을 따라 살지 말고 교회의 음성을 따라 살고 싶었다. 
우리집은 인천이었지만 주일마다 기쁜소식수원교회로 와서 예배를 드리고, 수원에 사는 친정어머니와 동생들을 만났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도 내 마음에 있는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었다. 친정어머니는 줄곧 불교를 믿던 분이었는데 몇 해 전부터 교회에 다니고 계셨다. 처음에 내가 ‘예수님이 우리 모든 죄를 다 씻어주셔서 죄 사함을 받았다’고 복음을 전했을 때는 죄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반발하셨는데, 얼마 뒤 하나님의 은혜로 어머니가 말씀을 받아들이고 죄가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2023년 3월에 소천하셨다. ‘내가 교회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어찌할 뻔했을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놀랍고 너무 감사했다.
어머니의 장례식이 있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넷째 여동생이 화재로 연기에 질식해 중환자실에 입원한 소식을 들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중환자실 면회는 하루에 2회밖에 안된다고 하는데 의사 선생님에게 사정하여 3회를 허락받았다. 사람이 의식이 없어도 귀는 마지막까지 열려있기에 하루 세 번씩 동생 귀에 계속 복음을 전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면서 우리 모든 죗값을 다 갚으셨어. 그래서 우리 죄가 없는 거야. 이 말씀을 믿고 죄 사함을 받으면 하늘나라에 가는 거야.” 여러 차례 반복해서 복음을 전하고 나서 내가 한 말이 믿어지면 어떻게든 표현을 해보라고 했다. 동생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나님 앞에 정말 감사했다. 
넷째 여동생이 세상을 떠난 후 셋째 여동생은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집에서 일어난 화재로 동생을 잃은 슬픔과 죄책감으로 고통스러워했다. 내가 전한 복음을 듣고 넷째가 구원받아 천국에 갔다고 이야기해 주었지만, 셋째 여동생에게는 그 말이 의미가 없었다. 하나님이 친정어머니를 인도하여 구원하셨듯이 셋째 동생도 하나님이 인도하시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주일예배를 마치면 동생을 찾아가서 그날 들은 말씀을 하나씩 이야기해 주었다. 동생이 듣든 안 듣든 하나님에게 동생을 맡기고 나는 입을 열었다. 

동생을 인도하신 하나님
그러던 차에 여동생이 굿을 하겠다고 했다. 세상을 떠난 동생에 대한 죄책감으로 점집에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리 교회에 새로 부임해 오신 임민철 목사님을 찾아갔다. 임 목사님은 동생의 마음이 굉장히 어려울 테니 동생이 원하는 대로 해주라고 하셨다. 내 생각과 다르지만 하나님의 종의 인도를 따랐다. 
목사님은 덧붙여서 굿하는 비용도 도와주라고 하셨다.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물어보았다. 목사님은 동생에게 “네가 이렇게 해야 마음이 편하다면 이렇게 한번 해보자. 만약 네 마음이 편치 않으면 그때는 언니를 따라 교회에 한번 가보자.”라고 하라며 동생의 마음을 얻으라고 하셨다. 목사님이 말씀해주신 그대로 동생에게 말하고 돈도 챙겨주었다. 동생이 놀라워하고 고마워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는 동생이 굿을 하는데 나도 같이 가자고 한 것이었다. 목사님에게 다시 여쭤보았다. 목사님은 이번에도 같이 가보라고 하셨다. 내 생애 처음으로 굿을 하는 곳에 갔다. 굿은 아침 10시부터 저녁 4시까지 진행되었다. 말로만 듣던 광경들이 이어졌다. 굿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흰쌀 위에 덮어놓았던 무명보자기를 걷어내자 쌀 위에 십자가 모양이 그려져 있고 그 아래 꽃 모양도 있었다. 굿을 하던 사람도 놀라고 우리도 놀랐다. 세상을 떠난 동생이 죄 사함을 받고 천국에 간 사실을, 하나님이 셋째 동생에게 눈으로 보여주셨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날 후로 동생의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 것 같았다. 온라인으로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우리 선교회 목사님들의 설교 영상도 보내고, 우리 교회 새벽 말씀 화상앱 줌 링크도 보냈다. 나는 가끔 새벽 예배를 빼먹기도 하는데 동생은 새벽마다 들어와서 말씀을 듣는다고 했다. 동생과 대화하다 보면 말씀이 스며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어느 날은 교회에도 한번 가보자고 말했는데, 올해 6월경부터 동생이 교회에 나오고 있다. 사람 만나는 것을 꺼려하던 동생이 요즘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니 너무 감사하다. 매월 첫 주에 교회에서 성찬식을 하는데, 죄 사함을 받은 사람만 성찬식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하자 동생이 자기도 참여하겠다고 했다. 셋째 동생을 구원하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했다.

약속의 말씀이 일하실 것이기에
나에게 이번 여름수양회는 전과 다른 수양회였다. 교회로 돌아온 후 몇 차례 수양회에 갔지만 그동안은 손님처럼 대접만 받고 다녀왔는데, 이번에는 주차를 담당하는 사역자님부터 하루 세끼 밥을 해 주시는 주방 봉사를 하는 형제 자매들 한 분 한 분이 새롭게 보이고 소중하고 감사했다. 수십 년 동안 죄 사함의 복음을 한결같이 전하시는 박옥수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내가 구원받아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생각하니 정말 감사했다. 
9년 만에 교회에 돌아와서 보니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한 죄 사함을 복음을 전하는 우리 교회만큼 좋은 교회가 어디에 있을까 싶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죄를 씻어놓으신 것을 그대로 믿으면 구원받는 것처럼, 신앙생활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믿는 것임을 요즘 새삼 알게 되었다. 시댁과 친정 가족들, 아들 가족의 구원도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하신 약속의 말씀이 일하실 것이기에 내가 책임질 것이 없었다.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쉬면 되었다. ‘어떤 형편에도 말씀이 진리구나’라는 마음이 들면서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뿐이다. 허망한 내 생각을 따라 살던 데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종의 인도 안에 하나님의 말씀 안에 참된 평안이 있음을 알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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