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최고의 성지(聖地)는 성경이다.
그리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이다.
지금 이스라엘의 성지라 불리는 곳에서는 대부분 예수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성경 속에서 예수님은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갈릴리를 거니시고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기적을 행하고 계신다.
그 예수님이 우리 마음속에서 동일하게 역사하고 계신다.
‘야르데닛’과 ‘카세르 엘 야후드’
갈릴리 호수에서 사해까지 이스라엘 땅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요단강.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지나가신 곳이 많지만 반드시 지나가셔야 했던 곳 가운데 하나가 요단강이었다. 2천 년 전 예수님이 지나가셨던 요단강으로 함께 가보자.
이스라엘을 찾는 관광객이나 성지순례자들이 반드시 방문하는 곳이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 호수 근처에 있는 요단강으로, 성지순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관광객들이 흰옷을 입고 세례를 받으며 감격스러워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히브리 말로 ‘야르데닛(Yardenit)’이라 불리는 그곳은 각 나라의 정교회와 성지순례 관광가이드들에 의해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곳이라고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일부 신약 연구자들과 예수님을 믿는 극소수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장소가 야르데닛이 아닌 다른 곳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도 야르데닛에 처음 갔을 때에는 그곳이 요단강의 일부이기에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곳이라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으나, 반대 의견을 접하면서 성경을 찾아가며 조목조목 따져보았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던 장소를 성경 몇 곳에서 찾아보자.
1. 세례 요한이 활동했던 곳은 이스라엘의 북부가 아
니라 유대 광야다. 그리고 유대 광야 쪽에 있는 요
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다. (마 3:1~5, 막 1:4~5,
요 1:28 - 요한이 세례를 베풀었던 요단강과 가까
운 동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유대 광야 쪽으로
가는 첫 번째 길목에 있다.)
2. 세례 요한이 예수님이 계시던 곳으로 이동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요단강에 이르러 세례
요한을 만나 세례를 받으셨다. (마 3:13~14, 막 1:9)
이런 점들을 생각해보면, 예수님과 세례 요한이 이스라엘 북부의 요단강에서 만났다는 이야기는 이상하기 짝이 없다.
이후 나는 이곳의 몇몇 신약 학자들과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세례 받은 장소라고 이야기하는 ‘카세르 엘 야후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 명칭은 히브리어가 아닌 아랍어로서 ‘유대인의 궁정’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국경 지역에 있어서, 강 이편은 이스라엘 땅이고 저편은 요르단 땅이다. 그리고 강 바로 옆에는 황량한 유대 광야가 펼쳐져 있다.
북부 이스라엘에 있는 갈릴리의 푸른 숲에 둘러싸인 요단강이 아니라, 황량한 유대 광야를 끼고 흐르고 있는 요단강 줄기. 성경에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던 장면에 나오는 모습을 ‘카세르 엘 야후드’는 다 갖추고 있었다. 어느 지점이라고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2천 년 전 그곳 어딘가에서 세례 요한이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있었을 것이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은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얼마 전, 어느 유대인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게 베푼 세례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아요. 당시에 세례 요한이 베푼 세례는 죄인들이 자기 죄를 고백하고 받는 세례,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며 받는 죄인을 위한 세례인데, 왜 죄가 없는 예수님이 하필 죄인들이 우글거리는 곳에 가셔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지요?”
질문을 받고 무척 감사했다. 내가 구원받을 때 들었던 복음의 한 부분인 마태복음 3장 이야기를 함께 자세히 나눌 수 있었다.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게 베푼 세례는 죄인을 위한 세례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세례였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구원자 예수님에게 우리의 모든 죄를 넘겨 영원한 속죄를 이루게 하려고 베푼 세례였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것이 복음의 완성이라면,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예수님에게 베푼 세례는 우리의 모든 죄 짐이 예수님에게로 온전히 옮겨지고 동시에 죄 사함의 사역이 인간에게서 예수님에게로 넘어간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마 3:13~15)
예수님의 세례는 분명 회개의 세례와 다른 세례,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한 세례요, 세례를 받으신 후 하늘이 열린 세례였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마 3:16)
‘카세르 엘 야후드’ 근처 어딘가에서 세례 요한이 죄로 고통하는 많은 유대인들에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하고 외쳤을 것이다. 인간의 죄를 짊어지신 하나님의 어린양! 나는 유대 광야의 ‘카세르 엘 야후드’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셨을 때, 그때 그 하늘은 어땠을까?’
요단강 어느 곳에서 세례 요한은 자신을 찾아오실 예수님을 손꼽아 기다렸을 것이다. 그렇게 기다리던 예수님을 만났을 때 세례 요한의 마음이 얼마나 벅찼겠는가!
흐르는 요단강 물에 손을 담가보았다. 그저 차갑게 흐르는 흙탕물일 뿐이었다. 내 옆으로 국경에 관한 교육을 받으러 그곳을 방문한 이스라엘의 젊은 군인들이 보였다. 머리 위로 손을 흔들며 그들을 향해 웃으면서, 나도 세례 요한처럼 소리쳐보았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