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가까이 들어섰는지 처녀 총각들의 결혼 소식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교회의 내가 속한 구역에서도 한 자매가 결혼 소식을 알려왔다. 결혼 이후에는 남편이 속한 구역으로 옮겨서 예배를 드려야 하기에 자매와 마지막으로 함께하는 구역예배를 얼마 전에 가졌다. 결혼을 앞둔 소감을 자매가 간증했다. 자매의 부모님은 두 분 다 교회에 나오는 분이 아니라서 자매가 교회를 중심으로 사는 것을 늘 못마땅해하셨다. 그렇다 보니 자매는 부모님과 마음으로 대화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특히 신앙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 어머니와는 대화가 뜸한 지 오래였다. 그래서 교회에서 만난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부모님이 무작정 반대할 거라는 부담을 가지고, 남편이 될 형제와 함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그런데 의외로 부모님이 형제를 따뜻하게 맞아주어서 놀랐다고 한다. 부모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저희 부모님 어떠세요?”라고 묻자, 남편이 될 형제가 “어머님이 낯설지가 않네요. 우리 교회 자매님 같으세요.”라고 했다. 형제의 대답은 자매로 하여금 깊이 생각하게 했다. ‘그렇구나 대화가 안 될 거라는 생각으로 내가 엄마와 마음을 닫고 있었던 거구나. 형제가 엄마에 대한 마음이 그렇다면 이제 나도 엄마를 교회 자매님처럼 대해야겠다.’
결혼 준비로 어머니를 설득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이전 같으면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있더라도 일체 언급하지 않았을 텐데, ‘맞아. 엄마는 자매님이니까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얘기해도 되겠다.’ 하고 주절주절 마음을 표현했다. 그러자 뜻밖에 어머니는 하나님이 주신 자매의 마음에 의견을 합하고 존중해 주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어머니와 처음으로 하나님을 말하고 마음도 나눌 수 있었다며 기뻐하는 자매의 간증이 그날 내 마음에 자국을 남겼다. 얼마 되지 않아 자매의 어머니는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고, 나도 그분을 예수님 안에서 한 자매로 만나뵐 수 있었다.
2010년에 기쁜소식수성교회가 새 예배당로 옮겼을 때도 이와 같은 간증이 있었다. 헌당예배를 드리던 날 박옥수 목사님이 “교회에 나오지 않는 남편들도 이미 교회의 장년들입니다.”라고 말씀하셨고, 그날 자매들의 마음에 소망이 생겼다. 그 중에서도 교회에 간다고 오랫동안 핍박이 많았던 정순자 자매에게 그 말씀이 지혜의 싹을 틔웠다. ‘우리 남편이 목사님이 보시기에 이미 장년 형제구나. 그럼 나도 형제처럼 대해야 맞는 거지.’ 그 후로는 남편을 대할 때마다 마음으로 대하고 가끔 “형제님~.” 하고 불러 주기도 했다.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전도 집회에 참석하여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고, 지금은 교회에서 한 구역을 돌보는 구역장으로 교회의 일꾼이 되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많은 자매들의 가정에 남편이 구원받는 은혜가 있었다고 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보석 같은 말씀으로, 내가 사모하는 구절이다. 성경은 믿음에 대하여 증거하길, 바라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사실은 실상도 있고 증거도 나타났다고 말한다. ‘없으니까 바라는 건데 어떻게 실상이 있고, 증거가 있다고 하는데 왜 보이지 않는지...’ 이렇게 하면서 이 말씀을 뒤집어도 읽고 바로도 읽다 보면 내 눈이 믿음에 대하여 밝아지는 것을 느낀다.
이미 누리고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먼 곳에서 막연히 바라보기만 했던 것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