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시 34:19)
[오피니언]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시 34:19)
  • 글 | 이한솔(아이티, 기쁜소식레카이교회 선교사)
  • 승인 2021.10.07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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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호 기쁜소식
선교지 이야기 | 아이티

 

아이티는 대통령이 암살당할 정도로 치안이 악화되고 규모 7.2의 강진까지 발생해 큰 혼란에 빠져 있다. 지난 6월에는 이한솔 선교사 일행이 갱단의 총격을 받고, 8월에는 지진으로 교회가 무너지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교사 부부와 성도들을 신실하게 지켜주셨다. 이한솔 선교사의 간증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이제 여기서 죽는구나’
6월 4일, 아이티 북쪽에 있는 투흐디노라는 도시에서 헌당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새벽이었다. 수도에서 외곽으로 나가는 길목에 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아 근처 경찰서로 갔다. 최근 아이티는 치안이 좋지 않아서 경찰에게 혹시 이 길에 문제가 있는지 물었더니 아무 문제 없으니 지나가라고 했다. 마침 길목을 지나가려는 다른 차도 있어서 안심하고 다시 출발했다.
한 100미터나 지나갔을까? 갑자기 총을 겨눈 두 명의 갱단이 나타났다. 우리는 곧바로 차를 후진했는데 뒤에서 따라오던 차와 충돌했고 이내 “타타타탕” 하면서 총소리가 빗발치듯 들려오기 시작했다. 
우리 차에는 다섯 명이 타고 있었고, 나는 조수석에서 고개를 들고 총알이 어느 방향에서 날아오는지 살폈는데, 뒷좌석에 타고 있던 아내가 “고개 숙여!”라고 외침과 동시에 차 유리가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차체에 총알이 박히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갱단은 사방에서 총을 쏘았다. 차는 시동이 걸리지 않았고, 앉아 있을 수도 없고,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 더욱더 당황스러웠다. 고개를 숙이고 엎드린 채 한동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아이티에 살면서 무장강도를 몇 번 만났지만 실제 총격을 당한 일은 처음이어서 ‘이제 여기서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갱들이 쏘는 총은 권총이나 가벼운 소총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기관총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운전석에 있던 형제가 차 문을 열고는 경찰서로 뛰어갔고, 정신이 없는 와중에 경찰들이 빨리 경찰서로 오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에게 먼저 뛰라고 했지만 갱단들이 계속해서 총을 쏘고 있는데 어떻게 뛰느냐고, 이건 자살 행위라며 못 뛰겠다고 했다. “그럼 여기 앉아 있다가 총 맞아 죽을 거야?” 하며 뛰라고 했다. 차에 있으면 죽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때 아내 옆에 앉아있던 현지 사모가 먼저 경찰서로 달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현지 전도사가 뛰어나가자 아내도 용기를 내서 달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도 뛰었다. 갱단은 경찰서를 향해서도 총을 쏘아대서 우리 다섯 명은 경찰서에 들어가기도 전에 한동안 쥐 죽은 듯이 바닥에 엎드려 있어야 했다.

목사님의 기도는 우리에게 한 줄기 빛이었다
잠시 후 총소리가 멈춘 틈을 타 경찰서 안으로 뛰어 들어갔는데 경찰서도 창문이 다 부서지고 내부는 아수라장이었다. 아내는 신발을 신을 겨를이 없어 맨발로 사력을 다해 뛰었는데 경찰서에 도착하고 보니 바닥에 깔린 유리 조각 때문에 발이 찢어져 엉망이 되어 있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아픔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에 계신 박옥수 목사님에게 빨리 연락을 드려야겠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경찰서 안에 있는데도 총격은 계속되었다. 박 목사님은 우리가 무장강도를 만났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전화를 주셨다. 다행히 아무도 총상을 입지 않았고 안전하게 피했다는 이야기에 목사님은 너무 감격하며 기도해주셨다.
“하나님, 당신의 아들 이한솔 형제가 옛날에는 죄의 종이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종이 되어서 아이티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동안에 많은 어려움과 시련을 겪을 때마다 지키셨는데, 총알이 빗발치듯 쏟아지는 그곳에서 지켜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말할 수 없는 은혜가 아이티에 임해서 이 일로 많은 아이티 사람이 구원받게 하시고 영광을 받게 해주옵소서. 정말 주님께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총소리가 빗발치는 경찰서에서 들은 목사님의 기도는 우리에게 한 줄기 빛이었다.

한 명도 총알을 맞지 않은 건 기적이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은 얼마 전 차를 타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갱단이 나타나자 급히 경찰서로 들어가 차를 세웠는데, 갱단들은 경찰서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무차별로 사격하고 탈취했다고 했다. 그리고 경찰들에게 만약 지나가는 차들을 지켜주거나 돌아가도록 도와준다면 가족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해서 경찰들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했다. 경찰서를 사이에 두고 갱단 간에 전쟁이 있었는데, 우리가 간 날은 3일째 전쟁 중이었다고 했다. 그들은 서로 누가 더 강하고 잔혹한지를 보여주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들과 차량에 무차별적인 총격을 가했고, 실제 우리가 경찰서에 있었던 당시 근처에는 시체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개들이 뜯어먹고 있었다.
그날 우리가 경찰서를 나온 뒤에 경찰서가 불타고 파괴되었다. 만일 우리가 다른 날 경찰서에 갔더라면 다 죽었을 뻔했다. 경찰은 우리가 갱단을 만난 자리에서 전날 다섯 명이 죽었는데 우리가 한 명도 총알을 맞지 않은 건 기적이라며 놀라워했다.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를 놀랍게 지켜주셨던 것이었다.

6시간 만에 지옥 같은 곳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우리가 경찰서에 있는 동안에도 경찰서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서 쉬지 않고 총격전을 벌였다. 무시무시한 총소리를 들으며 주님의 은혜를 구했는데, 
‘전쟁이 터지면 이럴까?’ 하고 생각했다. 다행히 형제들이 그 동네 길을 잘 아는 오토바이 운전사를 데려와서 현지 사모와 아내는 운전사들의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나는 모자를 눌러쓰고 얼굴을 가린 채 오토바이를 타고 필사적으로 나와 6시간 만에 지옥 같은 곳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수도에 있는 우리 교회에 도착하고 나니 그제야 긴장이 풀려 온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마치 악몽이라도 꾼 것처럼 믿어지지 않았다. 박 목사님은 우리가 무사히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전화를 주셨다. 나는 살면서 울어본 적이 거의 없는데, 목사님 사모님의 얼굴을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이 터졌다. 사모님도 많이 우셨다. 그제야 우리가 살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우리 부부를 아끼시는 목사님과 사모님의 마음 앞에서 한없이 어린아이가 되었다.
나중에 형제들이 차를 끌고 왔는데, 곳곳에 총알 자국이 보였다. 그날 아내가 고개를 숙이자마자 아내가 앉아있던 쪽 유리창을 총알이 뚫고 지나갔는데, 만약 그날 뒤에 앉아 있었던 세 명이 조금이라도 고개를 들었다면 큰 사고가 났을 것이고, 한 명이라도 총에 맞았으면 그 자리에 같이 있다가 다 죽을 수 있었다. 경찰 형제는 차에 선명하게 남은 총알 자국을 보더니, 일반 권총은 차체를 이렇게 뚫을 수 없는데 총알이 이정도 크기면 자동중화기로 쏜 건데 하나님이 지키셨다며 감사해했다. 정말 우리 다섯 명이 그 새벽에 빗발치는 총알 속에서 한 명도 다치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의 손길로 완벽하게 지키셨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정말 하나님은 우리의 방패요, 산성이셨다.

“괜찮아. 총알만 피하면 돼. 하나님이 자매를 지키셨잖아.”
하지만 그날부터 아내는 작은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숨 쉬는 것도 힘들어하고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아내가 그렇게 두려워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처음 본 나는 박 목사님에게 다시 전화를 드렸다. 목사님은 마침 미국에 방문한다며 우리 부부에게 미국으로 올 수 있느냐고 물으셨다. 때마침 우리는 여권이 만료되어 미국에 있는 대사관에 가야 했기에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6월 8일,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아내가 이렇게 불안해하는데 다시 아이티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아이티에서 여러 번 크고 작은 어려움을 만났었는데 ‘왜 나에게 또 이런 시련이 찾아왔을까?’하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애틀랜타에 도착해 2주간 격리하는 기간에도 아내의 불안 증세는 계속되었다. 갑자기 불안감이 찾아오면 아내는 꼭 다시 그날 차 안에 갇혀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며 괴로워했다. 아내의 모습을 보며 자책하기도 했는데, 하나님의 종을 만나는 것 말고는 아무런 소망이 없었다. 드디어 박 목사님이 애틀랜타에 오셨고, 우리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목사님을 뵈었다. 아내는 목사님에게 그날 얼마나 무서웠는지, 그 후로 불안 증세가 나타나는 이야기를 드렸다. 그런데 목사님은 웃으면서 “괜찮아, 총알만 피하면 돼. 하나님이 자매를 지키셨잖아.”라며 아내를 위해 기도해 주셨다. 그리고 항상 어려움 뒤에는 큰 축복이 기다리고 있다며 우리 마음에 소망을 심어주셨다.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 아내의 불안 증세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렇지, 하나님이 빗발치는 총알 속에서도 우리를 지키셨구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네.’ 아내 마음에 하나님의 종의 말씀이 들어가 두려움을 내어쫓고 소망이 일어나자 그때부터 아내는 간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간증할 때마다 “안녕하세요? 세계에서 최고로 행복한 아이티 사모 이일영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불안감에 떨던 아내가 행복해하고 하루빨리 아이티로 돌아가서 사람들에게 다시 복음을 전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님 앞에 정말 감사해 얼마나 눈물이 났는지 모른다.

바울에게 일하셨던 하나님이 내 인생에도 일하고 계셨다
박 목사님은 애틀랜타에 오셔서 사도행전 28장 말씀을 전하셨다. 
“사도 바울이 배가 난파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건지셨고, 독사에게 물리는 일이 있으면서 사람들이 진실로 그는 살인한 자라고 했지만 그 마음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독사를 불에 떨어버렸고 조금의 상함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기에 소망이 가득하고 담대합니다.” 
바울에게 일하셨던 하나님이 내 인생에도 동일하게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이 보이면서 그렇게 감사했다.
아이티는 대통령이 암살당할 정도로 치안이 좋지 않고 수십 개의 갱단이 곳곳을 점거해 형편은 어려워 보이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신실하게 지키고 계시는 것이 분명히 보였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힘있게 일하시겠다는 마음이 들면서 마음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당한 일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일어났다
애틀랜타에 있는 동안 아이티 목회자 한 분을 만났다. 애틀랜타에서 가장 큰 아이티 교회인 선한 사마리아인 교회 브레이브 목사님이다. 내가 아이티에서 선교하고 있다고 하자 아이티의 치안이 안 좋아서 자기들도 못 들어가고 있고, 아이티 사람들도 나오려고 하는 그곳에 들어가 선교하고 있느냐면서 고맙다고 마음을 활짝 여셨다. 게다가 애틀랜타에서 열렸던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도 관람해서 그라시아스합창단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 계셨다.
2011년에는 그라시아스합창단과 박옥수 목사님이 아이티에 오셔서 집회도 하고 공연도 하셨다고 이야기드리자 깜짝 놀라면서 주일 예배에 와서 간증해달라고 하셨다. 주일에 브레이브 목사님 교회에 가서 무장 강도를 만났지만 나를 지키신 하나님을 이야기하며 복음을 전했는데, 그날 참석했던 교인들이 쉴 새 없이 박수를 치며 감격해했고, 예배가 끝나자 수많은 교인이 자기 나라를 위해 일해주어 감사하다며 인사하고 가셨다. 브레이브 목사님은 교인들이 간증을 듣고 마음이 일어나 드리는 헌금이라며 봉투를 건네셨는데, 1,500달러나 들어있었다.
또한 브레이브 목사님은 애틀랜타에서 이틀간 열린 집회에 다 참석하여 박 목사님과 면담하고 복음을 듣고 마음을 활짝 여셨다. 앞으로 기쁜소식선교회와 같이 일하고 싶다며 ‘매년 아이티에 가는데 함께 일하자. 다음에는 기회가 된다면 박 목사님과 그라시아스합창단을 초대해 교인들에게 복음을 듣게 하고 싶다.’라며 무척 기뻐하셨다. 우리가 당한 일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일어난 일이고, 그 일로 하나님께서 브레이브 목사님 마음을 활짝 여신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죽음 앞에 한 번 서고 나니 감사한 게 너무 많아졌다
미국에서 두 달간 있으면서 아이티에서 지냈던 시간을 되돌아보았다. 아내가 유산하기도 했고, 내가 감옥에 들어간 적도 있었다. 장티푸스에 걸려 며칠 만에 10킬로그램 이상 빠지기도 했고, 아내와 아이들이 풍토병에 걸려 앓기도 했고, 권총 강도도 세 차례나 만나 죽을 뻔하기도 했다. 그런데 돌아보면 신기하게도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과 교회를 신실하게 지키셨고, 어려울 때마다 오히려 교회가 자라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시련을 만날 때마다 사탄은 내 마음을 절망 속으로 밀어 넣으려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때마다 하나님의 종을 통해 우리를 돕고 계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다. 
그리고 실제로 죽음 앞에 한 번 서고 나니 아내가 옆에 같이 있어 주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하나님의 종들과 형제 자매들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일도 정말 감사하고, 밥 한 그릇 먹는 것, 잠자는 것, 가족들, 특히 사랑하는 아이들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 등등 감사한 게 너무 많아졌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시 34:19) 이 말씀대로 신앙은 어려움을 만나지 않는 게 아니라 늘 모든 어려움에서 건지고 지키시는 하나님을 보는 것이었다. 박 목사님도 많은 어려움을 만났지만 하나님이 한 번도 어려움이 어려움으로만 끝나게 한 적이 없다고 하셨는데,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이 감사하고, 이런 일로 교회와 하나님의 종들의 더 많은 기도와 은혜를 맛볼 수 있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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