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발견하는 하나님의 섭리-1
과학의 발전은 그동안 우리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의 원리를 드러냈다. 천동설이 틀리고 지동설이 맞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우리가 보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에 오류가 있음을 알려준다. 성경 속 많은 말씀과 비유가 자연현상을 인용하는데, 현대에 우리가 얻게 된 과학 지식이 성경을 새롭고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번 호에서는 식물의 접붙이기와 성경 속 접붙이기의 차이를 통해 인간과 예수님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본다.
인류 역사에서 질병은 빼놓을 수 없는 주제이다. 여전히 진행 중인 코로나19를 비롯해 과거 유럽의 흑사병, 전 세계를 휩쓸었던 스페인 독감 등 새로운 질병은 늘 발생한다. 질병은 인체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농업의 발달은 인류에게 풍성한 먹거리를 제공하며 인구수 증가와 장수를 이끌어왔는데 그 과정에서 작물의 질병과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포도나무를 한 예로 들 수 있다. 와인용 포도나무는 유럽에서 재배되는데, 19세기 후반에 유럽의 포도밭을 황폐화시키며 와인 생산량을 절반으로 만든 사건이 있었다. 당시 식물학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며 북미 대륙의 식물들이 유럽으로 들어왔다. 이 과정에서 ‘포도뿌리혹벌레’라는 해충이 같이 들어왔던 것이다. 북미 대륙의 포도나무는 포도뿌리혹벌레를 이겨내는 반면, 유럽의 포도나무는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해충에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했다.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당하던 프랑스는 해결책을 모색하던 중, 미국 재배종과 유럽 재배종을 접붙이기 할 것을 제안받는다. 미국 재배종이 포도뿌리혹벌레에 해를 입지 않는다는 것에서 착안한 것이다. 해충이 포도나무 뿌리에서 즙을 빨아먹기 때문에, 미국 재배종의 뿌리에 유럽 재배종의 줄기를 접붙이면 해충에 대한 저항성을 가질 것이라 예상했다. 아이디어는 적중했다. 접붙이기를 한 유럽 재배종은 해충의 공격을 이겨내며 정상적으로 포도 열매를 맺었다. 이 사건은 와인 역사에 한 획을 그으며, 와인을 절명의 위기에서 구해내고 지속할 수 있게 하였다.
장점과 단점이 만나는 식물의 접붙이기
접붙이기는 여러 과목과 채소에서 행해진다. 감나무 줄기를 고욤나무 뿌리에, 감귤나무 줄기를 탱자나무 뿌리에, 오이와 참외 줄기를 호박 뿌리에 접붙인다. 그러면 뿌리가 가진 병해나 저온 등에 대한 저항성이 지상부의 생장을 유지하게 해주어, 생육에 저해를 받지 않고 질 좋은 과실을 맺는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접붙이기에 잘 어울린다. 농업 기술이 발달하며 유전자 조작이 가능하고, 다양한 화학 농약이 개발되는 현대에도 접붙이기는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며 다른 기술로 대체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재배하는 모든 식물에 추가로 얻고 싶은 생리적 특징이 있다면, 접붙이기를 하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접붙이기는 모든 식물들 간에 이루어지지 않고 특정한 식물들 간에만 성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이 접붙이기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할까? 2020년에 저명한 학술지<사이언스Science>에 접붙이기에 관한 논문이 실렸다. 논문은 종 간의 친화력이 ‘셀룰라아제’라는 효소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다. 서로 다른 종이 만나면 결합 부위에 셀룰라아제가 축적되고, 이 효소는 식물 세포벽을 이루는 셀룰로오스를 분해해 서로 다른 종이 결합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접붙이기의 핵심은 서로 다른 종의 물관과 체관이 파이프가 이어지듯 연결되고, 물관과 체관을 만들어내는 줄기세포인 형성층이 마치 한 종의 줄기세포인 것처럼 연결되어 하나의 식물체인 것처럼 생장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이질적인 상태의 두 식물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셀룰라아제가 접합 부위에서 서로 다른 세포벽을 분해해 마치 하나인 것처럼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식물 호르몬이 관여한다. 그 중 ‘옥신’은 단연 식물의 형태와 기능을 관장하는 대표 호르몬으로, 서로 다른 종의 관다발이 하나로 엮이게 해준다. 새로 연결된 뿌리와 줄기가 전에 만나보지 못한 서로 간의 신호를 주고받게 한다. 뿌리에서 줄기로, 줄기에서 뿌리로 단백질·핵산·호르몬과 같은 신호 전달 물질이 흐르게 하고, 접붙인 식물 전체의 생리와 생장에 영향을 준다.
식물 접붙이기의 특징은, 접붙이는 두 식물의 장점과 단점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참외 줄기를 호박 뿌리에 접붙이는 경우, 참외는 열매의 수익성이 좋지만 뿌리가 약하고 반대로 호박은 뿌리가 강하지만 열매의 수익성이 나쁘다. 그래서 참외 줄기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호박 뿌리에 접붙이는 것이다.
무익한 인간과 선하신 예수님과의 접붙임
로마서 11장에 접붙이기를 인용한 말씀이 있다.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롬 11:17~18)
이 말씀에서는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 뿌리에 접붙여졌다. 우리가 뿌리 되신 예수님에게 접붙여졌다는 말이다. 그런데 살펴보면, 성경이 말하는 접붙이기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 우리가 아는 대로라면, 참감람나무의 열매를 얻고 싶기 때문에 그 줄기를 돌감람나무 뿌리에 접붙일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돌감람나무를 참감람나무에 접붙였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우리가 예수님에게 접붙여지는 이유는, 우리에게 장점이 있거나 예수님에게 약점이 있어서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장점이 하나도 없고 약점만 있고, 예수님에게는 장점만 있다. 따라서 우리가 아는 접붙이기 관점에서는 인간을 예수님에게 접붙일 이유가 전혀 없다. 좋은 점이 없는 인간은 버리면 그만이다. 인간과 예수님 사이의 접붙이기는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른 형태의 접붙이기다. 예수님에게 있는 좋은 것이 인간에게 흘러서, 인간의 모든 것이 예수님의 것으로 바뀌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다 사라지고 인간에게서 예수님의 성품만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하여 접붙여진 가지인 인간의 원래 성품이 사라지는 과정이 먼저 필요하다. 식물의 접붙이기에서는 ‘셀룰라아제’가 두 식물을 연결시키듯, 인간과 예수님의 접붙이기에서는 예수님이 못박혀 돌아가신 십자가가 그 일을 이룬다. 십자가에서 흘린 예수님의 피가 인간의 모든 죄를 씻어서 인간과 예수님이 연결되는 데에 아무 문제가 없게 했다. 또한 로마서 6장 6절에서는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의 좋은 것이 인간에게 흐르는 데에 아무 장애가 없게 만든 것이다.
이제 예수님에게 접붙여진 인간은 예수님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롬 11:16)
예수님에게 접붙여져서 자신에게 있는 좋은 성품이 열매를 맺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거룩함이 나타난 것이기에, 성도는 스스로 좋은 열매를 맺은 것처럼 자긍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윤준선 이학박사로, 카이스트와 동 대학원에서 식물학을 전공하며 식물의 면역과 발달을 연구하였다. 현재 ㈜팜한농에서 인류의 먹거리 생산을 위해 작물 재배에 유용한 유전자와 작물보호제를 연구, 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