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배우다_3
‘태권브이’는 1970년대에 태어난 대한민국 중장년층의 추억이 담긴 애니메이션이다. 조종사인 훈이와 태권브이가 혼연일체가 되어 마지막 순간에 태권도로 적을 물리칠 때면, 우리 모두 훈이로 빙의되었고 승리의 기쁨을 같이했다. 대개 친구들이 훈이를 꿈꾸며 태권도 학원에 다닐 때 필자는 로봇에 관심을 가졌고, 어릴 적 장래 희망은 ‘로봇 공학자’였다. 로봇 태권브이는 조종사가 꼭 필요한데, 훈이와 태권브이가 결합되어 하나가 되어 움직인다. 훈이는 ‘뇌’이고 태권브이는 ‘몸’이 되어, 개념상으로는 로봇보다는 인간과 기계의 결합체인 개조인간(사이보그)에 가깝다.
필자가 중학생이던 시절에는 학교에서 영화를 단체로 관람하는 문화의 날이 있었다. 한번은 내가 사정이 있어서 영화 관람을 못 했는데, 다음 날 등교하니 친구들이 매우 흥분해 있었다. 전날 본 영화가 ‘터미네이터’였던 것이다. 겉모습은 인간이지만 실제로는 로봇인 설정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전까지는 로봇을 단순한 기계의 조합체로 여겼는데, 영화 속에 나오는 로봇은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고 움직일 수 있는 ‘생각과 육체’를 가진 개체로 그려져 깊은 인상을 남겼다.
컴퓨터의 역사
1940년대부터 컴퓨터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1970년대 중반에 개인용 컴퓨터가 만들어졌다. 영화 터미네이터가 1984년에 제작되었지만, 1980년대 당시의 컴퓨터와 인공지능 기술은 영화에서 그려졌던 기술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다.
1990년대에 이르러 인터넷이 개발되고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IT(정보기술) 분야가 짧은 개발 기간에 비해 우리 삶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컴퓨터나 스마트기기는 우리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일부가 되었다.
그 후 인공지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빅스비’와 ‘시리’는 전 세계인에게 익숙한 영어 이름이 되었고, 컴퓨터를 알지 못했던 노인들도 스마트폰의 음성인식 인공지능 플랫폼에게 말로 묻거나 지시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인공지능 기술은 산업계뿐만 아니라 예술, 문화, 멀티미디어, 비즈니스 등 여러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이런 인공지능 기술은 자연과 무관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식물의 유전에서 영감을 받은 알고리즘
인공지능은 인간의 생각이나 학습 능력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실현한 기술로, 수많은 데이터들의 흐름과 유형을 숙지한 뒤 적절한 결과를 찾아내 반응하는 방식이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인터넷의 폭발적 확산과 컴퓨터 프로세서의 성능 향상 등으로 데이터 양이 급증하면서, 데이터를 활용한 기계 학습 기술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특히 컴퓨터가 외부 데이터를 스스로 조합, 분석하여 학습하는 기술인 딥러닝(deep learning)의 고안으로 인공지능이 획기적으로 도약했다. 그 결과로 이미지 인식과 음성 인식 등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고, 최근 폭발적인 확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인공지능에서 최적의 답을 구하기 위해 사용되는 주요 *알고리즘에 ‘유전자 알고리즘’이 있다. 유전자 알고리즘은 1975년에 존 홀랜드가 개발한 최적화 기법으로, 멘델이 발견한 유전법칙의 원리를 모방했다. 식물의 형질이 유전자를 통해 부모로부터 자손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교차, 변이’ 등이 일어나는데, 그러한 원리를 인공지능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문제를 해결해가는 알고리즘으로 사용했다. 또한 다양한 식물 형질의 조합이 최종적으로 존속성이 높은 형태로 유지되는 원리에서 ‘자연 선택’을 통한 최적의 답을 찾는 알고리즘의 개념을 차용하였다.
인간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컴퓨터
인공지능의 대표적인 최적화 알고리즘인 유전자 알고리즘이 식물의 유전에서 영감을 받았듯,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대로 인공지능을 구현하기 위한 컴퓨터도 인간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개발되었다. 컴퓨터의 구조는 크게 중앙처리장치, 메모리장치, 그래픽카드, 보조기억장치, 입·출력장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과 비교해 보면 중앙처리장치는 사람의 뇌, 메모리장치는 뇌의 기억력, 그래픽카드는 인간의 시각, 입·출력장치는 사람의 손이나 입을 모방하여 만들어졌다.
특히 중앙처리장치CPU의 기능은 인간의 뇌와 유사하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몇 가지 단점이 있다. 컴퓨터 CPU는 많은 전력이 필요하고, 복잡하고 병렬적인 처리가 이루어지지 않으며, 학습과 적응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최근 인공지능이 각광을 받으면서 기존 CPU의 단점이 더욱 부각되었고, 인간 뇌의 구조를 모방해서 만든 반도체인 ‘뉴로모픽’의 개발이 활발하다. ‘뉴로모픽’은 뇌의 뉴런neuron과 형태morphic의 합성어로, 인간 신경세포의 작동 방식을 그대로 모사한 것이다.
사람의 뇌가 적은 전력으로 방대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이유는 뉴런과 시냅스를 잇는 방대한 연결 구조가 병렬로 이루어진 덕분이다. 뉴런은 전기적인 방법으로 신호를 전달하는 세포다. 또한 뉴런과 다른 세포를 연결해 주는 시냅스는 수시로 이어졌다 끊어지면서 에너지 소모량을 최소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IT기술과 인공지능은 최첨단 기술이라서 자연과는 무관한 듯 보이지만, 이들의 모태는 자연이다. 정교하고 안정화된 구조의 완전체인 인간과 자연이야말로 가장 놀라운 창조물인 것이다.
박남은 | 공학 박사. 조선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하였으며, 전산유체역학을 이용한 한국형로켓 발사체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졸업 후 한국항공우주산업(주)에서 T-50 전투기 개발과 수리온/LAH 헬리콥터 개발에 참여하였으며, 차세대 회전익기 등을 연구, 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