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 간증
“이번에도 아들이네요! 축하합니다.”
나는 아들 넷의 엄마다. 아이들과 시장을 가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이들을 보며 “한 집 애들이에요?” “아들만 넷이라구요?” “서로 친구 같고 좋겠네!” “애국자시네요.”라고 한다. 요즘 같은 저출산 시대에 아들 넷을 낳고 키우느라 애쓴다며 과일 하나라도 더 얹어주시곤 한다. 외동으로 자라서 어릴 적에 늘 심심했다는 남편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들은 많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종종 했다.
2016년 나는 서부아프리카 베냉으로 해외봉사를 다녀왔다. 전도여행 중에 우연히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서 한 임산부가 아이를 출산하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세상에 없던 존재가 태어나는 순간을 처음으로 목격하며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임산부가 눈물을 흘리며 아이를 안고 행복해하는 모습이 경이로웠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이 느껴졌다. 그 일을 친정 엄마에게 이야기를 드렸더니 “나도 너를 그렇게 낳았지. 세상에서 제일 행복했던 순간이었어!”라고 하셨다.
나도 결혼하여 첫 아이를 임신했다. 출산 예정일인 2013년 9월 25일에 진통이 시작됐다. 두려움도 있었지만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이사야 40장 31절 말씀으로 두려움을 이길 수 있었다. 진통이 길어져 수술을 권유받기도 했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신 임신이기에 해산 또한 하게 하시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13시간의 진통 후 첫째 아이를 품에 안는 순간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기쁨이 더 컸기에 첫아이를 품에 안는 그 순간은 아직도 내 가슴에 잊히지가 않는다.
아이를 돌보며 잠이 부족해도, 밥 먹을 새가 없어도, 아이가 아파 밤새 칭얼대도 나를 보고 방긋 웃는 모습, 새근새근 자는 모습만 봐도 피곤이 싹 달아났다.
이른 새벽 아이가 배가 고파 울면 한쪽 눈을 비비고 일어나 젖을 먹이며 아이의 볼에 입맞춤을 하는 그 시간이 왜 그리 행복한지.... 지금도 그때의 기억만 떠올리면 너무나도 행복하다. 아이의 울음만으로도 금세 기저귀가 불편한지 배고픈지 다 알 수 있는 것은 신기하다.
둘째도 셋째도 넷째도 모두 아들이란 말에 서운하기도 했지만, 막상 아이가 태어나면 성별은 결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모든 것이 감사하고 기쁘기만 했다.
코로나19 시기에 넷째 아이가 태어난 후 돌이 지날 무렵, 40도의 고열로 아이가 경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품에 안고 구급차를 타고 대학병원으로 가는데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아들 셋을 키우면서 교회 안에서 감사하게 은혜로 잘 키우고 있다 생각했는데, 넷째 아이가 경기하는 모습을 보니 은혜와 감사는 온데간데없고 두려움이 커져만 갔다. 병원으로 가는 도중 우리 교회 목사님이 전화로 기도해 주셨다.
“찬우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건강해져서 복음의 일에 함께 쓰임 받게 해주세요.”
목사님의 기도를 들으며 ‘이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닌 하나님의 자녀구나’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그 뒤로도 종종 고열이 나고 경기를 하면 ‘아이가 아프지 않게 내가 책임져야겠구나’라는 생각이 점점 커져만 갔다. 내가 아이를 책임지려는 마음이 드니까 교회에서 하는 모든 것들이 짐이 되었고 불평스러웠다.
어느 날, 이런 내 마음을 보시고 우리 교회 목사님이 내게 왜 이런 마음들이 형성되었는지 물으셨다. 내 마음에 아이가 잘못될 거 같은 두려운 마음이 가득 차 있었다. 목사님은 ‘두려움은 누가 주는 마음인지’ 물으셨다.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종의 말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주는 생각을 받고 사는 내 모습이 발견되었다. 그 뒤로 어떤 생각이 들 때마다 ‘이 마음은 누가 주는 마음이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막내가 다섯 살이 되던 해, 소아과에서 막내 귀 안에 진주종이 있다고 했다. 이비인후과에 가서 다시 검사해 보니 대학병원에 가서 CT를 찍어보라고 했다. 대학병원에서 다시 검사하자 진주종은 청력을 방해해 전신마취 후 수술로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아이가 겨우 다섯 살인데 전신마취라니.... 왜 또 이런 일이 생긴 거지?’ 순간 이런 생각이 올라왔지만 ‘아니지, 내 생각을 믿지 말고 목사님에게 기도 받으러 가자!’라는 마음이 들었다. 목사님을 찾아갔다.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괜찮아!”라는 말씀이 내 마음을 평안하게 했다.
2024년 1월 29일 수술하는 날이 다가왔다. 남편은 해외 출장중이었고 막내아들과 병원으로 가며 기도했다.
“하나님, 이 아이는 하나님의 자녀이니 당신이 책임져 주세요!”
구역 식구들의 SNS 단체방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아이니 주님께서 의사가 수술하는 모든 일을 주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기도 내용을 올려주셨다.
새벽 일찍 일어나 수술을 앞둔 막내 동생을 위해 기도했다는 세 아들들의 문자를 보며 우리가 함께라서 너무 행복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4시간의 수술이 끝나고 귀를 절개하지 않고 진주종을 깨끗이 제거했다는 의사의 말을 들으며 감사했다. 수술실 앞에서 혼자 기다리며 내 곁에 앙망할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도 너무 좋았다.
때론 아이들이 서로 싸우기도 한다. 아이들과 남편은 로마서를 펴고 노트에 적는 시간을 갖는다. 특히 로마서 3장 23절과 24절을 함께 나누는 동안 아이들 마음에 복음이 되새겨지고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것을 본다. 아직 휴대폰이 없는 아이들은 서로가 장난감이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며 블럭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 넷을 바라보면 어른들 말씀처럼 나는 안 먹어도 이미 배부르다.
5학년, 3학년, 1학년, 다섯 살, 네 아들들은 여름 방학만 손꼽아 기다린다. 엄마 아빠와 함께 여름캠프에 갈 생각에 매일 신난다. 짐을 싸며 여름캠프에서 만날 친구들, 예전에 즐거웠던 아카데미 시간을 서로 이야기하느라 바쁘다. 교회와 함께하며 밝고 예쁘게 자라나는 사 형제를 보면 매일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