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위를 바라보는 삶
[설교] 위를 바라보는 삶
  • 글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24.10.07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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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호 기쁜소식
믿음에 이르는 길_창세기 강해(20편)

오늘도 지난 시간에 이어서 방주 안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창세기 6장에 보면, 방주의 길이는 300규빗입니다. 1규빗은 약 45cm입니다. 방주의 너비는 50규빗, 방주의 높이는 30규빗입니다. 30규빗이면 약 15m쯤 되는 높이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에 창을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라고 하셨습니다. 방주는 여느 배와 달리 지붕이 있는 배로, 하나님은 지붕에서부터 한 규빗에 창을 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방주는 창이 있는 위에서 빛이 들어오기 때문에, 어두운 방주 안에서 빛을 보려면 위를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이는 성막에서도 위를 바라보아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제사장이 성막의 지성소에 들어갔을 때 밑을 내려다보면 모래뿐이어서 실망할 수밖에 없지만, 위를 보면 그룹(천사)들이 수놓아져 있는 것이 보이고, 그 천사들이 자기를 지키고 보호하고 있음을 보면서 힘과 용기를 얻는 것입니다.

방주 안의 삶은 위를 바라보는 삶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의 삶은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굉장히 큰 영향을 받습니다. 만일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 자신을 바라본다고 생각해 봅시다. 우리 속은 언제나 추하고 더럽고 연약하기에 그런 자신밖에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약한 자신을 바라보면 우리가 무엇인가를 더 해야 하고 노력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생각대로 안 되기 때문에 낙심하고 절망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면 어떻습니까? 예수님은 모든 거룩함과 귀하심과 의로우심과 온전하심과 능하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을 때 예수님의 의로움과 거룩함과 온전함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자기를 바라보고 자신의 선이나 의를 의지할 때에는 추하고 더럽고 죄악된 마음에 거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령 저에게 아주 깨끗하고 정결한 집이 한 채 있고, 추하고 더러운 집이 한 채 있다고 합시다. 제가 깨끗한 집에 들어가 살면, 비록 제 몸이 더럽다 할지라도 저도 모르게 자연히 발을 씻게 되고 깨끗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먼지가 쌓인 더러운 집에 거하면, 씻어도 소용이 없기 때문에 씻을 필요 없이 그냥 더럽고 추한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은 얼마나 선하게 살려고 애쓰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한 주님의 집에서 주님을 바라보고 위를 바라보는 삶을 살 때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 거룩한 예수님 앞에서 추하고 더러운 우리 삶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분 안에 살다 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삶이 거룩하고 온전한 삶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러나 추하고 더러운 집에 사는 사람은 아무리 거룩해지려고 해도 집 자체가 추하고 더럽기 때문에 자기도 그 집과 더불어 더러운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 안에 계신 거룩하고 의롭고 정결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느냐, 아니면 자신의 연약하고 추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며 그것을 중심으로 사느냐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 가운데 온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 행위로 ‘온전하다, 깨끗하다, 거룩하다’고 칭함을 받는다면, 그것은 껍데기이지 속은 아닙니다. 스스로 거룩하고 의롭게 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의롭거나 거룩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나는 의롭다. 거룩하다.”라고 하는 말은 ‘예수님의 의를 입었다, 예수님의 거룩함을 입었다’는 뜻입니다. 
방주의 창을 위에다 낸 이유는, 방주 안이 어둡기 때문에 위를 쳐다보면 빛을 볼 수 있지만 아래를 내려다보면 어둠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추하고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우리를 온전케 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죄에 빠지고 연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행위를 거룩한 위치에 끌어올려 의로운 삶을 살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스스로 자기 행위를 흠이 없고 거룩하고 의로운 위치로 끌어올려서 의로워지려고 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연약하고 부족하며 더럽기 때문에 우리 행위를 온전케 하려고 하면 계속해서 실패할 수밖에 없고, 쓰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추하고 더러운 행위는 그대로 두고 먼저 마음을 의롭고 거룩한 방향으로 이끌어 옮겨놓아야 합니다. 우리 믿음을 의로운 방향으로, 거룩한 방향으로 옮겨놓으면, 몸이 더러운 우리가 깨끗한 집에 사는 것과 같은 현상이 일어납니다. 우리 행동은 여전히 추하고 더럽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온전케 했고 거룩케 했다는 믿음으로 위를 바라보면 우리가 온전하고 거룩한 위치에 도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으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악과 멀어지고 술이나 담배나 음란한 삶을 멀리하게 되며 거룩함에 거하는 삶으로 변화됩니다.
오늘 술이나 담배 때문에, 음란한 마음 때문에, 어떤 죄악 때문에 고통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하거나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애쓰거나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죄를 눈처럼 희게 씻었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여러분의 마음이 먼저 주의 거룩함 가운데 거하면, 여러분도 모르는 사이에 삶이 점점 거룩한 삶으로 바뀝니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은 우리 행위를 거룩한 상태로 끌어올려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육체는 추하고 더럽고 악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 마음이 거룩한 위치에 있으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육체가 그 믿음을 따라오고 삶이 거룩함과 온전함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러한 비밀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가 거룩함을 이루려고 노력하다가 되지 않으니까 결국 위선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방주의 창을 지붕 가까이 만들어 놓고 위를 바라보는 삶을 살게 한 것은, 우리가 구원의 방주 되신 예수님 안에 들어와서 연약하고 추한 우리 모습을 보지 말고 우리를 온전케 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보면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했고, 히브리서 3장 1절에서는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연약한 자신을 보면 늘 실망과 고통 속에 빠지지만, 우리를 온전케 하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 마음이 기쁨과 감사로 채워져 옛날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저는 제가 전한 말씀을 듣고 추하고 더러운 사람들, 범죄하여 교도소에 있던 사람들이 믿음으로 예수님 앞에 돌아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잘못된 행위나 더러운 습관에서 벗어나기 정말 어렵지만,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마음이 거룩해졌을 때 삶이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치 빛이 들어오면 어둠이 물러가듯이 그들의 삶에서 악하고 추한 것들이 물러가고 거룩한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살인하고 범죄하여 교도소 안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변화되어 이제는 복음을 위해 살고,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된 사람도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은 죄악된 습성 때문에 고통을 느끼고 있습니까? 죄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이성 문제나 술 문제 때문에 고통스럽습니까? 그것을 끊으려고 노력하면 힘들고 고통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냥 두고 먼저 여러분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의로움에 거하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나는 의롭다, 거룩하다, 예수님의 보혈로 온전하게 되었다’라는 위치에 머물면, 여러분도 모르는 사이에 추하고 더러운 삶이 점점 여러분을 떠나게 됩니다. 어느덧 여러분이 거룩하고 진실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앞서 거룩한 신앙의 삶을 살았던 많은 믿음의 선진들도, 그들이 남다른 노력을 해서라기보다 그들의 마음이 믿음으로 거룩함을 입어서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삶이 온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이 예수님을 바라보길 바랍니다. 거룩한 예수님을 바라보면 여러분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같이 변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예수님의 거룩함 속에 거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에서 예수님의 거룩함을 생각하고 기억하고 있는 동안 죄악이 여러분의 마음을 유혹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예수님으로 차 있는 동안 죄악에 빠져들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악을 이기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안에 예수님이 계셔서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마음에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악을 이기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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