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요셉처럼, 룻처럼 하나님은 내 삶을 이끌고 만드셨다
[라이프] 요셉처럼, 룻처럼 하나님은 내 삶을 이끌고 만드셨다
  • 글 | 김범섭(브라질, 기쁜소식상파울루교회 선교사)
  • 승인 2024.05.12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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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호 기쁜소식
선교사 수기_5회
선교 초기에 구원받은 한인들

 

요셉처럼 내 인생에도 때로는 어려움과 고난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만나는 일들이었기에 나와 상관없이 하나님은 당신의 신실하신 약속대로 브라질에 역사하셨고 복음에 필요한 모든 것을 허락하셔서 창성케 하셨다. 교회와 종의 음성에 이끌림받는 동안 하나님은 내가 만난 모든 일을 선으로 바꿔 주시고, 복음만을 위해서 살 수 있도록 만들어가셨다.

 

하나님이 주신 포르투갈어 이름 ‘요셉’
브라질에서 사역하면서 현지인들이 내 이름을 물을 때면, 알려줘도 한국어 발음이 그들에겐 익숙지 않고 낯선 탓인지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브라질 사람들이 사용하는 포르투갈어 이름을 하나 생각해 보았는데, 하나님은 내게 ‘요셉’이라는 이름을 주셨다. 포르투갈어로 요셉은 ‘조세José’, 내 성 김Kim은 ‘킹’이라고 발음한다. 
하나님은 요셉의 인생에 치리자의 꿈을 주셨지만,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그를 시기한 형들로 인해 요셉은 채색옷이 벗겨지고 종의 옷을 입은 채 애굽으로 팔려갔다.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하는 동안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에게 누명을 썼고, 그가 입은 종의 옷은 다시금 죄수복으로 바뀌면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감옥에서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주었고, 전직을 회복한 그가 자신을 기억해 주길 기대했다. 그 기대가 끝났을 때 바로 왕의 꿈을 계기로 술 맡은 관원장이 자신의 허물을 추억하면서 요셉을 기억해냈고, 그렇게 요셉은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다. 하나님은 요셉으로 하여금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하게 하시면서 그를 애굽의 총리로 세우셨고, 죄수의 옷을 벗기시고 치리자의 세마포 옷을 입게 하셨다. 그 요셉의 삶을 묵상하며 ‘하나님이 요셉을 이끄셨던 과정과 동일하게 내 삶을 인도하고 계신다’는 마음이 들었고, 하나님께서는 내 포르투갈어 이름을 요셉이라고 짓게 하셨다. 


‘이건 저 선교사들이 들어야 할 말씀이지’
1998년, 하나님의 은혜로 영주권을 얻어 처음으로 페루에서 가진 남미 사역자 모임에 참석할 수 있었다. 박옥수 목사님이 오셔서 남미 선교사들에게 교제해 주셨는데, “다른 나라 몇몇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받던 선교비 지원을 믿음으로 중단했더니, 하나님이 놀랍게 역사하시고 도우셔서 지원을 받을 때보다 더 많은 물질을 응답받아 건물을 사는 등 풍성한 삶을 살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목사님이 그 말씀을 하실 때 나는 선교를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또 한국에서 지원받아야 월세를 내고 조금 남는 물질로 생활을 할 수 있었기에 ‘나는 아직 선교비를 중단하기엔 이르다’는 마음으로 듣고만 있었다. 주변 국가의 몇몇 선교사들은 예배당 건물이 있으면서도 선교비 지원을 받고 있었기에 ‘이건 저 선교사들이 들어야 할 말씀’이라고 내 안에서 일축해버렸다.
사역자 모임을 마치고 브라질로 돌아온 나는 예전처럼 매달 선교비가 들어올 날짜를 기다리며 한 달 한 달을 지냈다. 당시 브라질 은행 계좌가 없던 나는 한국에서 보내주는 선교비를 어느 한인 여행사 계좌로 송금받고, 입금이 확인되면 여행사에서 브라질 돈으로 환전해 주는 식으로 선교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날도 선교비를 받으러 여행사를 찾아갔는데 아직 한국에서 송금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며칠이 지난 뒤에 다시 여행사를 찾아갔는데도 아직 입금이 안 됐다고 했다. 여행사 사장은 ‘며칠 뒤에 다시 와 보라’고 했지만, 두세 번 허탕을 치고 여행사를 나오면서 무심결에 하늘을 쳐다봤는데 얼마 전 페루에서 박옥수 목사님이 선교비를 끊는 부분에 교제해 주셨던 말씀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선교비를 받을 때보다 믿음으로 선교비를 끊었을 때 하나님이 몇 배로 더 물질을 공급해 주시고 풍족한 삶을 살게 하신다면, 나도 정말 그렇게 살고 싶었고 그런 하나님을 경험하고 싶었다. 집에 돌아와서 아내를 불러 우리도 선교비를 끊으면 어떻겠냐고 물으며 내게 들었던 마음을 이야기했다. 감사하게도 아내는 그렇게 하자고 동의해 주었다. 

“목사님, 저희가 믿음으로 선교비를 끊겠습니다”
‘선교비가 끊기고 물질이 없어 집세를 못 내고 쫓겨나 결국 망하게 된다면 어쩌지?’ 하고 생각해 보니, 망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선교사 가족이 기껏 망해봐야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망해도 ‘선교 실패’라는 딱지가 붙고 창피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사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전에 들었던 박 목사님 설교 예화 중에서 ‘내가 집에서 쫓겨나 다리 밑에 살게 된다 한들, 하나님은 절대로 당신의 아들을 거지처럼 살게 두시지 않는다’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언제까지 한국에서 오는 선교비만 바라보고 살 수는 없는 일이었고, 어차피 앞으로도 믿음으로 살아야 하고 물질적인 부분도 하나님이 도우시는 것을 경험해야만 선교사의 삶을 계속해서 살 수 있겠단 마음이 들어 앞뒤 안 가리고 마음의 결정을 따라 선교비를 끊기로 했다. 그날로 선교비를 보내주셨던 한국의 담당 목사님께 전화를 걸었다. 
“목사님, 저희가 믿음으로 선교비를 끊겠습니다. 저희가 받던 선교비는 다른 곳에 사용해 주세요. 얼마 전에 박 목사님이 믿음으로 선교비를 끊으면 하나님이 몇 배로 보상해 주신다고 교제해 주셨는데, 저도 정말 이렇게 도우시는 하나님을 경험해 보고 싶습니다.”
담당 목사님이 그 전화를 받고는 깜짝 놀라면서 먼저 굉장히 미안해하셨다. “너무 바쁘게 지내다 보니 깜박했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당장 선교비를 보내주겠네.”라고 하셨다. 하지만 이후 내 마음의 간증을 듣고는 이내 내 마음을 이해해 주셨다. 그리고 목사님은 ‘지금 선교비를 끊더라도 혹 언제라도 다시 선교비가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따뜻한 말이 정말 고마웠다. 
선교비를 끊고 시간이 흘러가는데 별다른 징조나 변화가 없었다. 선교비를 믿음으로 끊었으니까 무언가 새로운 일이 일어나길 바랐는데 예전과 똑같은 삶의 연속인 것 같았다. 하지만 예전 같으면 선교비 오는 날짜를 월급쟁이가 월급 기다리듯이 기다려 왔는데, 이제는 그럴 일도 그런 마음도 싹 사라지고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어서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했다. 

신앙서적을 통해 시작된 성경 공부, 그리고 구원의 역사
그러던 중에 한번은 거실을 지나치는데, 책장에 꽂혀 있는 신앙서적이 눈에 들어왔다. 당시에 대한항공 조종사로 근무하던 송재경 형제님이 있었다. 형제님은 두세 달에 한 번씩 비행기에 승객들을 태우고 상파울루에 왔다 갔는데, 오기 전에는 항상 우리가 필요한 것을 챙겨서 전해주시려 했다. 우리는 그때마다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이나 <두 부류의 신앙> 등 신앙서적을 부탁드렸다. 그렇게 몇 번을 다녀가시면서 우리집 거실 책장은 한국에서 가져온 책들로 가득 찼다. 
갑자기 내 마음에 한인들이 발행하는 <상파울루 저널>이라는 신문에 책 광고를 내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다. 신문사에 연락해 ‘신앙서적 팝니다’라는 문구와 내 휴대폰 번호를 넣어서 광고를 만들어 실었다. 신문광고를 보고 교회에 다니는 한국 사람 한 분이 책을 보고 싶다고 연락을 주셨다. 이분은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 책을 읽고는 
‘또 다른 책을 사고 싶다’고 해서 다른 책을 가게에 가져다드렸는데, ‘책이 너무 좋다’고 하면서 새벽마다 성경 공부를 인도해 달라고 부탁하셨다. 그분은 직장에 가기 전에 먼저 새벽마다 성경 공부를 하고 직장에 출근하길 바라셨다. 
그때부터 그분은 새벽마다 우리집에 와서 한 시간씩 성경 공부를 하며 말씀을 듣고는 너무 좋아하셨다. 매일 점심 때마다 나를 초청해서 일류 식당으로 데리고 다니며 맛있는 음식도 사주곤 하셨다. 하루는 호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서 헌금이라며 내게 주셨다. 봉투가 두껍고 묵직한 게 느껴졌는데, 나중에 보니 정말 큰 액수의 돈이 들어 있었다. 또한 가깝게 지내는 지인들을 소개시켜주며 성경 공부 하는 자리를 마련해주셨고, 그렇게 소개받은 한 명 한 명과 성경 공부를 하다 보니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사람들을 만나러 다닐 스케줄을 잡아놓고 돌아가면서 성경 공부를 하기도 했다. 성경 공부를 통해 구원받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한인들이 한 명 두 명 다니던 교회를 분리하고 우리 예배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룻처럼 인도자의 음성을 따를 때 펼쳐진 은혜
룻은 하나님께 저주받은 족속인 모압 여인이요, 하나님의 성회에 들어올 수 없는 자였다. 룻이 인도자인 시어머니 나오미의 인도를 받는 동안 나오미가 룻이 복 받을 모든 조건을 만들었고, 룻은 저주에서 벗어나 다윗의 할아버지를 낳고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는 영광을 누렸다. 나오미가 룻에게 ‘너도 네 동서 오르바처럼 모압으로 돌아가라’고 했을 때 룻의 마음은 흔들림이 없었다. “제게 어머니를 떠나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고 강권하지 마세요. 어머니의 백성이 제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제 하나님이 되고,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저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입니다.”라고 고백했다. 
시어머니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온 룻은 처음에는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주웠는데 우연히 보아스가 속한 밭에 이르렀다. 하나님은 그 안에서 룻으로 하여금 자신의 수고가 아닌, 보아스가 베풀어주는 은혜로 말미암아 풍성한 양식을 얻어 시어머니에게 돌아갈 수 있게 하셨다. 룻처럼 나도 하나님의 종의 음성을 그냥 따라간 것밖에 없었는데, 하나님은 그 안에서 당신의 은혜로 많은 것들을 풍족히 누리고 얻게 하셨다. 

새 차도, 구원받을 사람도 다 종의 말씀 안에 있었다
브라질 선교 초창기, 우리는 아이들과 자주 기도회를 가졌다. 한번은 기도회 때 어린 아들이 “하나님, 우리 아빠에게 자동차를 허락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아들이 하나님께 자동차를 달라고 한 그 기도를 처음 들었을 때, 오히려 나는 선교를 나온 지 얼마 안 된 우리가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이 마치 사치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은 기도하면서 차를 주실 하나님을 단순하게 믿었고, 나는 그런 아이들을 향해 ‘그래, 꿈은 크게 가져라’는 식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기도한 것을 생각하면서 나는 아이들만큼도 이 부분에 기도하지 않았고 믿음도 없었음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아이들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기도한 후 얼마 안 있어 우리는 자동차 한 대를 선물로 얻었다. 그 간증을 소개하고자 한다. 
당시 우리 상파울루 교회의 이 형제님은 컨테이너를 수입하는 일을 하셨다. 한번은 서류가 잘못되어서 컨테이너 4개에 가득 들어 있는 노래방 기계 수천 대를 고스란히 세관에 압류당하게 되었고, 그 일로 잠도 못 자고 눈이 퉁퉁 부어서 우리 교회를 찾아왔다. 형제님은 그렇게 하나님이 낮추신 마음으로 복음을 들어 구원받고는 크게 기뻐하셨다. 구원받고 난 후 이 형제님은 문방구에서 파는 간단한 개인사업 증빙서류 양식지를 사서 다시 서류를 작성해 법원에 팩스로 보냈다. 
그런데 너무나 신기하게도 압류당해 묶여 있었던 컨테이너 4개에 대한 압류가 다 풀려 컨테이너를 다시 찾을 수 있게 되면서 형제님은 큰 손해를 면할 수 있었다. 만약 컨테이너를 다 찾지 못했다면 그에 대한 손해를 형제님이 다 물어내야 했고, 그 금액은 형제님 소유의 집과 땅을 팔아야 갚을 수 있을 만큼 어마어마하게 큰 액수였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은 물론, 어려움까지 해결해 주신 하나님이 어찌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형제님은 직원을 시켜 한국산 프레지오 12인승 새 차 한 대를 교회에 사주셨다. 그 차는 우리가 브라질을 누비며 복음을 전하는 데 귀하게 쓰였다. 어린아이의 기도도 들어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감사할 따름이다. 
이 형제님은 말씀을 들을 때마다 “목사님, 예배당이 작고 콘크리트 바닥이면 어떻습니까? 이곳에 진리가 있는데요.”라고 눈물을 흘리며 감격해하곤 하셨다. 그 외에도 당시 연결되었던 한인 형제 자매님들은 지금 브라질 교회의 꽃받침이 되었다. 마치 발전소에서 전기가 만들어져서 큰 공장을 돌리듯이, 하나님은 초창기에 구원받은 한인 형제 자매들의 헌신과 기도와 물질이 브라질에 복음을 전하는 데 큰 발판이 되도록 하셨다. 
한국을 떠날 때 박 목사님께서 ‘브라질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한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의미를 그제야 알게 되었다. 종을 통해서 하신 말씀 안에 이미 복음을 섬길 수 있는 많은 한인을 예배해 두시고, 그들의 삶을 이런저런 문제로 어렵게 하셔서 마음을 비우시고 또 그 빈 마음에 복음을 듣고 채우게 하신 것이다.

요셉처럼, 룻처럼 내 삶을 만들어가신 하나님
하나님은 요셉에게 두 아들을 주셨다. 요셉은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잊어버림)’라 짓고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의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창 41:51)라고 했다. 차자의 이름은 ‘에브라임(창성함)’이라 짓고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라고 했다. 하나님은 당신의 섭리 안에서 약속대로 요셉을 
‘치리자’로 세우셨고,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애굽과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셨다. 
이처럼 내 인생에도 때로는 어려움과 고난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만나는 일들이었기에 나와 상관없이 하나님은 당신의 신실하신 약속대로 내 삶을 만들어가셨다. 브라질에 복음으로 역사하셨고 복음에 필요한 모든 것을 아낌없이 허락해 주셔서 창성하게 하신 하나님을 보았다. 나도 룻처럼 저주받기에 합당한 자였지만 나오미의 인도 속에 참된 안식도, 쉴 곳도 있었듯이 교회와 종의 음성에 이끌림을 받았을 뿐인데 하나님은 내가 만났던 모든 일을 선으로 바꿔 주시고, 복음만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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