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진리의 좁은 길로 가게 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라이프] 진리의 좁은 길로 가게 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 글 | 김범섭(브라질, 기쁜소식상파울루교회 선교사)
  • 승인 2024.06.12 0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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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호 기쁜소식
선교사 수기_6회 (잊지 못할 사람들)

나로서는 포기하고 돌아설 일들 앞에서 하나님은 먼저 ‘나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기도하게 하셨다. 그리고 주가 주신 새 마음으로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하여 한 사람을, 한 가정을 구원하셨다. 사람들에게 때론 아픔을, 때론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을 주셔서 귀한 구원을 얻게 하시고, 진리의 좁은 길로 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선교지에서 배웠다. 

사탄은 내 마음에 절망을 심었지만, 하나님은 소망, 그리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참된 기쁨을 심으셨다. 브라질에서 선교하며 처음에는 사람들이 구원받아도 아무도 교회와 연결될 것 같지 않아 낙심 가운데 빠지기도 했다. 그 생각은 허상이었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었고, 하나님은 내가 복음을 전하는 동안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게 하셨다. 

뵙자마자 부친님이 하신 첫마디, “나는 죽음이 무섭습니다”
브라질에서 살면서 만난 수많은 사람, 그리고 하나님의 의를 맛본 사람 중에 잊지 못할 분은 이성렬 부친님이다. 부친님을 만난 것은 어느 자매님의 전도로 한 가정을 심방하게 되면서였다. 처음 방문한 집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응대를 받으며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내 눈에 들어온 부친님을 보는 순간,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오랜 병고 끝에 온몸은 앙상히 말라 뼈가 다 드러나 있는 모습이었고, 살이라곤 가죽에 붙어 있는 게 전부였다. 부친님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을까?
부친님은 오래 전에 브라질로 이민 오셨는데, 한국에서 서울대를 나오셨고 IQ가 150이 넘는 아주 똑똑한 분이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교회도 다니며 집사 직분까지 받으신 부친님을, 주위에서는 믿음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어느 날 부친님은 거울을 보다 당신의 코끝이 루돌프 사슴 코처럼 빨갛게 된 것을 발견하셨다. 처음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질 않아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뼈암으로 판정을 받았다. 결국 수술을 받으면서 코를 잘라내고 엉덩이 살을 이식했다. 부친님은 ‘코로 숨을 쉴 수 없게 되니 너무나 답답해 죽을 것만 같았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암은 나아지지 않고 다시 눈 쪽으로 전이되면서 또 한 차례의 수술로 한쪽 눈을 뽑아야 했다고 한다. 부친님의 얼굴 형체는 점점 괴상하게 변해갔고, 암은 계속 전이되어서 머리뼈를 3분의 1이나 절제했다. 내가 부친님을 처음 만났을 때, 부친님은 이미 여러 차례의 수술로 온몸이 지쳐 있었고, 마치 가지만 앙상히 남은 겨울나무처럼 말라 고통에 신음하고 계셨다. 오랫동안 병마에 시달리며 신경도 아주 날카로워지신 걸 알 수 있었다.
나를 만나고 부친님이 하신 첫마디가 “목사님, 나는 죽음이 무섭습니다.”였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해 봤지만 처음 듣는 말이었다. 부친님이 마지막 수술을 마치고 병상에 누워 있는데, 갑자기 건너편에 시커먼 형상의 그림자가 당신을 향해 있는 걸 보고 소리를 질렀다고 하셨다.
“가! 저리 가! 저리 가란 말이야…!”
크게 외치면서 부친님은 너무도 두려웠고, 그 그림자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고 하셨다. 그 일이 있고 난 뒤로 부친님은 악몽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나는 죽으면 반드시 지옥에 간다’는 생각이 들어 두려운 나머지 편히 죽지도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다고 하셨다. 그러던 중 우리를 만난 부친님은 첫마디로 ‘죽는 것이 무섭다’고 하신 것이다. 

유언과도 같은 냅킨의 글귀, ‘Santo(거룩합니다)’
나는 성경을 펴서 부친님에게 말씀을 전했다. 부친님이 말씀을 경청하며 달게 받아들이시는 모습이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시간이 많이 지나 밤 11시가 되어 돌아오려 했는데, 부친님은 ‘11시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가느냐?’고 아쉬워하셨다. 그동안 부친님이 오랜 시간을 힘들고 고독하게 지내오셨음을 알 수 있었다. 그날은 부친님에게 “저희, 내일 또 올게요.” 하고, 기도해 드리고 집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다. 맨 먼저 ‘영원한 생명을 주는 복음이 우리에게 있다’는 마음이 크게 들면서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로 감사했다. 
다음날도 부친님 댁을 방문해서 다시 한 번 복음을 전했다. 부친님이 구원받아 ‘이제 천국 갈 수 있다, 이젠 죽어도 괜찮다’며 감격해하셨다. 몸에 뼈만 앙상하게 남은 부친님에게 자리에 앉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구원받은 뒤 부친님은 휠체어를 타고 교회에 오셨다. 예배당 맨 앞자리에 앉아서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말씀을 들으며 길 수도 있는 예배를 끝까지 앉아 계셨다. 오로지 뼈만 가죽에 맞붙어있을 만큼 엉덩이 살이 없어 앉아 있기가 아주 힘들고 고통스러웠을 텐데도 부친님은 아무런 불평 없이 버티셨다. 
그렇게 죄에서 구원받고 영원한 의인으로 거듭나 세례도 받은 부친님은, 마지막까지 우리 곁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 어느 날, 부친님이 몸이 너무 안 좋아서 병원에 입원하셨다길래 찾아갔는데, 무언가 환상이 보이는지 손을 허공에 휘젓고 계셨다. 
“부친님, 뭐가 보이세요?” 
내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그러시는 걸 보니, 부친님의 의식이 혼미해진 것 같았다. 
“부친님, 하나님 앞에 거룩하세요? 의인이세요?”라고 묻자, 내가 가지고 있던 볼펜을 달라고 손짓하셨다. 종이가 안 보여서 옆에 있던 냅킨을 한 장 뽑아서 드렸더니 어렵게 글씨를 써서 내게 건네주셨다. 냅킨에는 ‘Santo쌍뚜’라고 적혀 있었다. 포르투갈어로 ‘거룩’이란 뜻이다. 전에는 ‘마지막 수술 후에 저승사자 같은 검은 환상을 보고 너무 무서워 소리를 질렀다’고 하셨는데, 구원받고 난 후로는 죽음 앞에서 평안하셨다. 

무익한 ‘내’가 아닌,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다음날 부친님은 소천하셨고, 장례식을 치르는 날 하늘에서는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쏟아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한 성도의 죽음을 귀하게 보시는 하나님의 손길로 우리가 장례를 치르는 그곳만 하늘이 뻥 뚫려 있었고, 다른 곳은 먹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우리가 장례식을 다 마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하늘에서 굵은 소낙비가 쏟아져내렸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다.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사 38:17) 
히스기야 왕에게 큰 병을 주셔서 죽을병에 걸린 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뛰어난 학벌과 능력을 갖춘 소위 세상에서 잘났던 이성렬 부친님에게 암이라는 병을 허락하셨다. 그리고 그 병을 통해 당신이 부친님의 영혼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게 하셨다. 또 복음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내 마음에 분명히 새겨 주셨다.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내 원함이나 달음박질이 무익하고,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야 함을 알려 주셨다. 

길이 없어 기도할 때 하나님이 새 힘을 주시고
하루는 어느 형제님의 전도로 식당을 운영하는 한인 부부를 찾아가 교제했다. 첫날 만나서 교제하는 시간이 참 좋았다. 부부가 겸비한 마음으로 말씀을 잘 들으시기에 ‘다음에 오면 복음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튿날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 다시 그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식당 영업이 끝나고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날은 복음을 전할 마음으로 갔는데, 앉자마자 부부는 우리 교회에 대해서 꼬치꼬치 묻기 시작했다. 내가 복음을 전할 것을 마귀가 이미 눈치채고 다른 사람들을 통해 그분들 마음에 우리 교회에 대한 의문과 불신을 심은 것이다. 
그분들은 질문에 대해 성경적으로 답해 드렸는데도 듣지 않고 다른 질문을 이어가셨다. 너무 당황스러웠고, 한편 실망도 되어 ‘오늘은 복음 전하기 어렵겠다’는 마음마저 들었다. 불신과 의문으로 가득 찬 그분들은 어떤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복음을 전하려던 내 마음에서도 결국 한계가 느껴졌다. 나는 대뜸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었고, 계단 밑에 있는 작은 화장실에 들어가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오늘 이 부부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왔는데, 길이 없습니다. 사탄이 벌써 이들 마음에 교회를 향한 불신을 넣었습니다. 어쩌면 좋습니까? 이제 주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제게 새 힘을 주시면 저는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다시 그 부부가 앉아 있는 곳으로 가는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게 없던 어떤 힘이 나를 잡아주는 것이 느껴졌다. 돌아와보니 아내가 여전히 그분들과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곧장 대화에 끼어들어 설교하듯 서서 말씀을 외치기 시작했다. 그분들도 내 행동에 의아해했지만, 아무 대꾸 없이 내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예수님이 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셔야만 했는지 이야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남편 분이 손뼉을 치면서 “목사님, 아멘입니다!” 하고 크게 반응하셨다. 
“저는 예전부터 이 부분이 항상 알고 싶었습니다. 기독교 영화를 봤을 때에도 항상 왜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셔야만 했는지가 늘 궁금했는데, 오늘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그 이유를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영원한 의를 이루시기 위해 세상의 죄를 다 지고 가신 것이 믿어집니다.”
그렇게 남편 분이 말씀을 받아들여 구원을 받으셨다. 그로부터 몇 분이 안 지나 아내도 말씀이 믿어진다고 하면서 순식간에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그분 가족은 다른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장로 집안이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항상 ‘어딘가에 진짜 진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진리는 큰 교회가 아닌, 작은 교회에 있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하며 항상 진리를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을 품고 여태껏 살아왔다고 하셨다. 
식당 주인 부부가 구원받으면서 세 딸도 연이어 복음을 듣고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 책을 읽으면서 모두 구원받았다. 그중 큰딸이 지금 미국 기쁜소식뉴욕교회 박영국 선교사의 아내인 노정아 사모다. 

내 원함과 상관없이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과 섭리
브라질에 왔을 때부터 설교집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을 포르투갈어로 번역해서 출판하는 것은 내 꿈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책을 번역하기에는 내 포르투갈어 실력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노정아 자매에게 영어판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을 빌려주었다. 영어에 능통한 노 자매는 그 책을 바로 포르투갈어로 번역한 뒤  장章 별로 나누어 프린트해서 식당 종업원들에게 주어 읽게 했다. 하나님이 너무나도 쉽게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 책을 포르투갈어로 번역해 브라질 출판사에서 발간할 수 있게 하신 것이다. 
내 원함 또는 피하고 싶은 마음과 아무 상관없이, 하나님은 이 가정을 통해서 당신의 권능과 섭리를 나타내셨다. 죄와 담배에 오랫동안 찌들어 살아왔던 한 사람을 새롭게 하시고, 교회의 장로로 세워 복음을 뒷받침하고 섬기게 만드셨다. 나로서는 그 식당에서 대화 중 결국 언성을 높이며 말다툼하다가 포기하고 돌아왔을 텐데, 하나님께서는 내게 먼저 ‘나로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하셨고, 기도하게 하셨다. 그래서 오로지 주님이 주신 새 마음으로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하셨고, 이를 통해 온 가족이 구원받는 걸 보게 하셨다. 

포르투갈어로 번역된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 개정판

‘내가 할 수 있다’는 교만의 결과는 풍랑이었다
마가복음 4장에서 날이 저물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이편에 있는 제자들의 마음을 저편으로 옮기기 원하셨다. 배를 타고 저편으로 가던 중에 제자들은 큰 광풍을 만났고, 물이 배 안에 가득하게 되어 모두 죽게 되었다. 그때서야 제자들은 고물에서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워 광풍으로 인해 죽게 된 것을 고백하고, 항복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제자들의 마음이 어쩌면 내가 갖고 있던 마음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다’는 마음, 그리고 내가 문제를 잡고 해결하고 싸우려 했던 교만한 마음의 결과는 큰 풍랑이었다. 그 큰 한계 앞에서 항복할 수밖에 없도록 하나님은 나를 이끌어가셨고, 할 수 없는 자가 된 나로서는 오직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었다. 손에서 노를 내려놓은 제자들의 입에서 “예수님, 우리로서는 안 됩니다. 우린 이미 망한 자들입니다.”라는 고백이 흘러나올 때, 예수님은 기다리셨다는 듯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꾸짖으시고 삼킬 듯 달려드는 큰 광풍과 파도를 말씀 한마디로 잠잠케 하셨다. 
나도 내가 문제를 쥐고 발버둥칠 때에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형편이 좋아질 수도 없었다. 그때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한마디는 한순간에 그 거대한 문제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었다. 내 마음을, 내 수고로 살려고 했던 이편에서 주님만이 일하실 수 있는 저편으로 옮기시려고 예수님은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만나게 하시고 항복하게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으로 살아가고 말씀으로 살아가는 복되고 쉬운 신앙의 길을 가르쳐 주셨다. 
브라질에 와서 복음을 전하며 사는 동안, 하나님은 내가 아닌 예수님의 능력과 도우심이 나와 상관없이 식당 주인 부부를 구원하시고 복음의 꽃받침으로 사용하시는 것을 보게 하셨다. 그 후로도 하나님은 복음에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허락하시고 도우시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이 구원받거나 변화받는 것은 내 경건함이나 능력 때문도, 내가 복음을 잘 전하기 때문도 아니었다. 하나님이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주신 것처럼, 진리를 찾고 있는 사람들을 극적으로 만나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 복음을 경청하게 해 주셨기에 그들이 구원받을 수 있었다. 

때론 아픔을, 때론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을 주신 하나님
껍데기 안으로 모래알 같은 불순물이 들어오면 진주조개는 이를 감싸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한다. 그 기나긴 고통의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결과물이 바로 진주다. 하나님도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때론 아픔을, 때론 ‘진리는 사람들이 외면하는 작은 교회에 있을지 몰라’ 하고 남들이 쉽사리 갖지 못하는,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을 주신다. 그 과정을 통해 마침내 진주만큼 귀한 구원을 얻게 하시고, 진리의 좁은 길로 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나는 선교지 브라질에서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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