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그들을 바꾼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라이프] 그들을 바꾼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 글 | 김범섭(브라질, 기쁜소식상파울루교회 선교사)
  • 승인 2024.08.09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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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호 기쁜소식
선교사 수기 8회_ 단기선교사와 한인 2세들
브라질 단기선교사들

IYF가 시작된 지 20여 년이 흐르는 동안, “내일 이맘때에”라는 말씀 안에서 수많은 청년들이 변화되었다. 브라질에 왔던 단기선교사들은 장기 선교사가 되어 브라질과 포어권 국가에서 사역하고 있다. 고집 센 황소 같던 브라질의 한인 2세들도 월드캠프에 참석하고 변화되어 지금은 전도자로 보석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나로서는 절대 바꿀 수 없던 청년들을 바꾼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하나님께 받은 약속 “내일 이맘때에”
2001년 박옥수 목사님은 국제청소년연합(International Youth Fellowship, IYF)을 설립하고, 신앙을 통해 청소년들을 올바르고 행복한 길로 인도하는 청소년 선도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셨다. 당시 박 목사님은 IYF를 설립하며 하나님께 받은 마음과 약속을, 열왕기하 7장 말씀으로 자주 전해주셨다. 
아람 군대에 포위된 사마리아 성에 양식이 떨어져 백성들이 굶주림으로 심한 고통을 받을 때,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 “내일 이맘때에”(왕하 7:1) 사마리아 성에 양식이 풍성해지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한 장관은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왕하 7:2) 하며 불신했고, 결국 말씀대로 사마리아에 양식이 풍성해진 광경을 보았지만 그 양식을 먹지 못하고 밟혀 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 말씀을 대하며 
‘내 마음이 열왕기하 7장 1절에 있으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겠지만, 2절에 있으면 이 장관처럼 부끄러움을 당할 수밖에 없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나님이 그들을 붙잡고 이끌어주셨다
돌이켜보면 “내일 이맘때에”는 하나님이 종을 통해서 교회 안에 허락하신 놀라운 약속이었다. IYF가 설립된 바로 그해에 월드캠프가 시작되었고, 이듬해부터 대학생들을 해외로 1년간 파견해 복음을 위해 일하게 하는 단기선교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2005년부터 단기선교 프로그램은 ‘굿뉴스코Good News Corps 해외봉사단’으로 명칭을 바꾸고 선교회 외부에서도 학생들을 모집하는 등 활동 범위를 크게 넓혔다.
우리 브라질에도 매년 단기선교사들이 찾아왔다. 혈기왕성하고 저마다 생각과 살아온 방식이 다른 청년들이 한곳에 모여 지내다보니 사소한 일로 부딪힐 때도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하나님이 그들을 붙잡아주시고 이끌어주셨다. 내가 볼 때는 해를 거듭할수록 단기선교사로 오는 학생들이 신앙으로 다스림 받아 절제하며 살아온 흔적을 찾기 힘들고, 마음에 영적인 세계보다 물질이나 세상이 크게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학생들이 마치 단기선교사가 아닌, 단기 ‘방해사’ 같았다. 물론 모든 학생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매해 나를 훈련시키는 ‘가시 같은(?)’ 존재들이 나타나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욱 바라볼 수밖에 없도록 했다. 

악을 깨닫고 구원받는 계기가 된 ‘별들의 전쟁’
한번은 그해 단기선교사 중에 우리 선교회 내부 학생이 아닌, 굿뉴스코 모집 광고를 보고 해외봉사에 매력을 느껴 브라질로 온 경미(가명)가 있었다. 경미는 다른 학생들보다 나이가 많고 사회 경험도 있는 여학생으로, 책임감과 리더십도 있는 등 꽤 괜찮은 학생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경미가 다른 여학생과 싸움이 붙어 사택까지 올라올 정도로 한바탕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경미는 머리숱이 많지 않아 한국에서 가져온 샴푸로만 머리를 감을 정도로 머리카락을 애지중지 관리했는데, 자신보다 어린 다른 여학생과 머리채를 붙잡고 싸운 것이었다. 여학생들이 지내는 방에 가보니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져 있었고, 그 머리카락 뭉치를 본 경미는 그야말로 눈이 뒤집혀 온갖 욕설을 퍼부어댔다. 그때 나는 한국말에 이렇게 욕이 많은지 새삼 알게 되었다. 경미는 화가 치밀어오른 나머지 손에 칼만 있었으면 칼부림이라도 일으킬 듯한 기세로 “내가 너 가만두지 않을 거야!” 하고 소리쳤다. 
사건의 발단은 기상 시간이었다. 경미는 같은 동기지만 자기보다 어린 학생들을 깨워 새벽 예배에 참석하려 했는데, 잘 일어나지 않으니까 “빨리 일어나. 새벽 시간 늦겠다! 어저께도 늦게 나와서 목사님께 꾸중 들었잖아. 얼른 일어나.” 하면서 깨웠다. 하지만 일어나지도 않고 반응하지도 않는 동생들한테 좀 짜증도 났기에 살살 툭툭 치면서 깨웠는데, 그중에 한 여학생이 그렇게 깨우는 언니한테 기분이 상했던지 대뜸 욕을 해버린 것이었다. 그게 빌미가 되어서 둘이 밀고 당기며 싸우는 동안, 힘도 세고 나이도 어린 그 여학생이 경미의 소중한 머리를 그렇게 엉망으로 만들어 놨다. 이성을 잃은 경미는 사택에 올라오자마자 ‘한국에 돌아가겠다’며 난리 난리를 쳤다. ‘그토록 예쁘고 착하고 순하게만 보였던 경미의 입에서 어찌 저런 말이 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한편으로는 이해도 갔지만 너무나 흥분해서 날뛰는 모습을 보면서 그 순간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고 경미도 마음이 진정되면서 나는 경미와 교제를 나눌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자세히 복음을 풀어서 전해줬는데 경미가 구원을 받고 간증했다. 자신은 나름대로 선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해서 전에는 복음을 들어도 능력이 되지 못했다고 했다. 이번 일로 자신이 살인도 얼마든지 저지를 수 있는 악한 인간이란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고 했다. 하나님은 이 사건을, 한 사람이 자신의 악을 깨닫고 구원받는 계기로 바꿔주셨고, 우리는 이 싸움을 ‘별들의 전쟁(단기선교사들은 하늘의 별들)’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1년간의 단기선교 생활을 아름답게 마친 경미는, 자기가 사용했던 노트북과 물건, 옷 등을 우리가 쓸 수 있도록 최대한 두고 갈 만큼 감사한 마음을 품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브라질에 온 다음 날 한국에 가겠다던 형제
또 다른 해에 왔던 단기선교사 조강선 형제도 잊을 수 없다. 지금은 내가 한국에 갈 때면 항상 공항으로 마중 나와서 내가 한국에 있는 동안 사용할 휴대폰 유심 칩을 준비해주는 고마운 형제이다. 
대학생 시절, 단기선교사로 지원해 온 조 형제는 브라질에 도착한 그다음 날부터 나를 찾아와 한국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떼를 썼다. 그때까지 한 번도 이런 학생이 없었고 단기선교사를 하던 도중에 돌아간 학생도 없었는데, 교제도 해보고 달래보기도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한국에서도 문제가 많던 조 형제의 부모님은 아들이 브라질에 가서 변화를 입고 돌아오기를 오매불망 바라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단기선교를 보낸 터였다. 그런데 조 형제는 그와 반대로 브라질에 오자마자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난리를 치며 매일 아침 사택 문 앞에 나타나 나를 괴롭혔다. 
내 마음 같았으면 정말 미련 없이 그를 한국으로 돌려보내고 싶었지만, 그의 아버지는 우리 교회에 나오시는 분이 아니었음에도 내게 전화하셔서 “목사님, 저희 아들을 절대로 한국에 돌려보내시면 안 됩니다. 필요하시면 제가 각서까지 써서 보내드릴 테니 거기서 뼈를 묻는 한이 있더라도 단기선교를 마치기 전까지 돌려보내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심지어 “제 아들도 변화시키지 못하시면서 어떻게 선교사라고 하실 수 있습니까?”라고 하실 정도로 그 아들이 한국에 돌아오는 것을 강력히 반대하셨다. 
조 형제와 아버지 사이에서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하루이틀 시간만 흘러갔고, 그동안 담배를 몰래 피우던 조 형제는 담배가 떨어지고 금단 현상 때문인지 거의 발작 수준으로 다른 단기선교사들에게마저 나쁜 영향을 끼칠 지경이 되었다. 결국 그를 보낸 한국 교회의 담임목사님과 전화 통화를 했다. 형제에 대해 너무 잘 아시던 담임목사님도 ‘조 형제가 단기선교를 마치지 못하고 오는 게 염려되지만, 선교사님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하시며 우리 상황을 이해해 주셨다. 
브라질에서도 한국에서도 모두가 포기했고, ‘이제는 안 되겠다’며 돌려보내려는 형편 속에서도 끝까지 형제를 포기하지 않은 것은 바로 구원도 받지 않은 그의 아버지셨다. 딸(조 형제의 누나)이 단기선교를 통해 큰 변화를 입고 돌아온 것을 본 아버지는 천방지축 아들을 향해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놓지 못하고 끝까지 우리에게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셨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아니 하루가 멀다 하고 수시로 무시로 찾아와 한국에 보내 달라고 애걸복걸하는 조 형제와의 나날은 내게 수난 시대나 다름없었다. 

 

원망 불평 가득한 마음에, 행복과 기쁨이 채워지고
그러던 중 조 형제는 무전전도여행 겸 예배당 건축을 위해 다른 형제들과 인디오촌으로 가게 되었다. 인디오촌은 상파울루에서 2,000 km 떨어져 있어, 버스로 35시간을 달려 인근 도시에 도착한 뒤 다시 다른 교통수단으로 몇 시간 더 들어가야 하는 오지에 위치해 있다. 그 인디오촌이 형제의 마음을 싹 바꿔놓는 장소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인디오촌에서 돌아온 조 형제는 온몸과 다리 전체에 벌레가 물려서 성한 곳이 없었다. 형제의 다리를 보면서 안타까워 한마디 했더니 오히려 “목사님, 이 상처들은 영광의 상처들입니다!” 하며 환하게 웃던 형제의 모습이 아직까지도 눈앞에 선하다. 
‘인디오촌에서 먹었던 라면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는 그는, 아니나다를까 인디오촌에 처음 도착해서는 원망 불평으로 마음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다 아무 소망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인디오들의 삶을 보았고, 전깃불 없이 밤중에 떠오르는 수많은 별을 쳐다보면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교만했던 자기 모습, 감사 없이 살아왔던 지난날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누구도 형제의 마음속에 만들어 줄 수 없었던 감사와 기쁨을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것이다. 척박한 인디오촌에서 제대로 된 장비도 없이 인디오들을 위한 예배당을 짓느라 몸은 힘들고 괴로웠지만, 마음에는 행복과 기쁨이 가득 차서 돌아온 것이다. 
제일 먼저 한국에 가겠다고 날뛰던 조 형제는 결국 귀국 항공편을 연기해서 그 기수 단기선교사들 중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활동하다 한국으로 돌아갔다. 단기선교를 하며 배운 영상 기술로 직장도 얻은 형제는 브라질에서 경험한 하나님과 추억들을 잊지 못해 그 후 우리가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공항으로 마중을 나왔다. 심지어 군 복무중일 때도 휴가를 얻어 우리를 마중나와서 어김없이 휴대폰 유심 칩을 건네주며 환한 미소로 반겨주던 조 형제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고집 센 황소 같던 아이들이 동역자가 되기까지
IYF가 시작된 지도 어느덧 20여 년이 훌쩍 지났고, “내일 이맘때에”라는 약속을 통해 수많은 학생이 변화를 입었다. 브라질에 왔던 단기선교사들 중에는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브라질을 잊지 못하고 선교학교에 들어가, 지금은 장기 선교사가 되어 나와 함께 브라질뿐 아니라 포르투갈어권 다른 나라에서 복음의 귀한 일을 하는 청년들이 있다. 그 삶이 너무 아름답다는 마음이 든다. 
매년 여름, 우리는 브라질에서 태어난 한인 2세들을 데리고 한국에서 열리는 IYF 월드캠프에 참석했다. 브라질에 사는 한인들은 대부분 의류업계에 종사하며 가게를 운영하는 등 비교적 부유한 삶을 살고 있었다. 한인 2세들은 교회 형제 자매들의 자녀들로 외모는 한국 사람이지만, 브라질에서 태어나 브라질의 언어와 문화 속에서 자란 탓에 속은 완전 브라질 사람이었다. 
브라질의 자유분방한 분위기에서 살던 학생들과 함께 보내는 한국 월드캠프는 기상 시간부터 전쟁이었다. 새벽부터 학생들을 깨워서 아침체조 장소로 나가면 항상 꼴찌로 도착해 토끼뜀으로 벌칙을 받아야 했고, 반복해서 벌칙을 받다 보니 다리에 알이 배어 며칠은 걷는 것조차 고통이었다. 기껏 깨워놓으면 학생들은 칫솔을 입에 물고 화장실로 기어들어갔다. ‘체조하고 와서 양치질을 하라’고 해도 귓등으로 듣는 등 막무가내였다. 무얼 하든 억지로 겨우겨우 끌고가야 하는 그들과 한 달간 캠프에 참석할 생각을 하니 머리가 절로 지끈거렸다. 요즘은 월드캠프 기간이 7박8일이지만 초창기에는 한 달이었다. 캠프에 참석한 학생들 중 구원받은 몇몇 아이들은 우리 말을 곧잘 듣고 따라왔지만, 대부분 부모님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참석한 아이들이라 그저 고집 센 황소들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과 교제도 나누고 복음도 전하는 동안 한 명 한 명 마음이 꺾이기 시작했고, 월드캠프가 마칠 즈음에는 대부분이 구원받으면서 캠프 시작 때와는 자세와 분위기가 확연하게 달라졌다. 학생들이 구원받은 간증을 하고 감사한 마음도 표현하는 등 변화를 받아 브라질로 돌아왔다. 나로서는 절대로 바꿀 수 없던 청년들이 교회와 IYF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변화된 것이다. 굶주리고 비참했던 사마리아 성이 하나님의 약속으로 새 생명을 얻었듯, 하나님은 ‘월드캠프’라는 약속의 배 안에 이들을 싣고 한 달의 시간을 항해하는 동안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셨다. 한인 2세 청년들 중 몇 명은 선교학교에 들어와 지금은 브라질 곳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어 보석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오늘도 주의 섭리에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브라질 교회 장로님 한 분이 기계를 발명하셨다. 음식물 쓰레기를 넣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악취가 사라지고 거름으로 바뀌어서 나오는 기계다. 분명히 역겨운 냄새가 나는 음식물 쓰레기였는데 이 기계를 통과해서 나오는 순간 식물을 키우는 데 필요한 유익한 거름이 되듯, 소망 없이 살던 청년들이 IYF와 월드캠프를 통해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리더들로 바뀌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 
브라질에도 마약과 게임 그리고 술에 빠져 방황하는 삶을 살아가는 청년들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우리 교회는 굿뉴스코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에서 단기선교사들이 브라질로 와서 활동하는가 하면, 브라질에서도 구원받은 청년들이 단기선교사로 해외에 나가 그 나라의 새로운 문화와 언어를 배워 돌아와서 귀한 일꾼으로 복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우리 교회 청년들을 처음 만났을 때에는 마음가짐과 차림새가 매우 엉망이었고 지극히 세상에 물들어 있었다. 그런데 교회에 들어와서 말씀인 참감람나무의 진액을 받으며 사는 동안, 어지러웠던 그들의 삶이 규모 있게 정돈되며 달라졌다. 화려하게 물들었던 머리 색깔이 단정하게 돌아오고, 남자 아이들 귀에 꽂혀 있던 귀걸이가 사라지고, 양손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20개나 되는 반지들이 빠져나가고 옷차림이 단정해지고….
하루는 어느 청년 형제를 불러서 이야기했다. “오늘부터 네가 부담스러운 일을 만나도 피하지만 않는다면, 하나님이 네 삶을 가장 복된 삶으로 만들어 주실 거야!” 그 말을 마음에 품은 형제는 부담스럽고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이전처럼 도망치는 삶이 아니라 부딪히며 넘어가는 삶을 배웠고, 어렵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을 배웠다. 그 신앙을 바탕으로 그는 교회 안에서 무수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세월이 지난 지금은 목사이자 선교사로, 리더이자 마인드교육 전문 강사로 쓰임받으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지금 브라질리아에서 사역하는 조대권 선교사다.
하나님이 교회와 종의 마음에 지혜를 주셔서 설립된 IYF를 통해, 브라질에서도 많은 청년들과 학생들이 마음껏 활동하고 있다. 어둠에 머물러 있던 수많은 젊은이들을 빛 가운데로 꺼내주시고 그 삶을 바꾸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앞에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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