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 이르는 길_창세기 강해(제23편)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선물이다. 특별히 창세기에는 빛나는 보석들이 무수히 숨겨져 있다. 미국 LA에 있는 ‘Radio Korea’에서 5년 동안 방송된 박옥수 목사의 <창세기 강해>가 이후 여섯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창세기 강해>에서 하늘의 보석들을 하나하나 발견해 가는 동안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빛나고 아름다운 세계가 점점 광활하게 펼쳐진다. 책에 실린 내용들 중 일부를 선정하여 연재한다.
창세기 10장에 등장하는 니므롯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창 10:7~9)
성경에 사냥꾼에 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데, 에스겔서에서는 거짓 선지자를 사냥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영혼을 사냥 당해서 그의 소유가 되고 죽임을 당하는 비참한 모습을 나타내기 위하여 성경은 거짓 선지자를 영혼을 사냥하는 사냥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세 아들 가운데 하나인 함의 아들 구스가 니므롯을 낳았는데, 그는 세상에서 처음 영걸이었으며, 그가 여호와 앞에 특이한 사냥꾼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호와 앞에 특이한 사냥꾼이 되었다는 말은, 바로 그가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는 사냥꾼이라는 부분을 나타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서 말하는 사냥꾼이 어떻게 인간의 영혼을 사냥하는가?’라는 문제를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10장 10절에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니므롯이 바벨탑을 세운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바벨론에 대한 심판이 있을 때 그 바벨론의 상품 가운데 하나가 ‘사람의 영혼’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신앙에 대하여 잘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몇몇 가지 일이나 자존심, 체면 때문에 영혼을 쉽게 팔아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이유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곤 합니다.
성경 역사를 참고해 보면, 인간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 그 길을 막고 있는 영적 세력이 있었습니다. 그 세력이 바벨탑 같은 웅장한 탑을 만들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는 마음을 막고, 하나님을 떠나 다른 데로 돌이키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 생활을 할 때 금송아지를 만들었는데, 금송아지를 만든 것이 왜 죄가 되느냐면 마땅히 하나님께로 향해야 할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이 아닌 다른 곳으로 돌이키게 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바벨탑을 쌓은 니므롯 시대부터 시작되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 사실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두 개의 큰 성이 나오는데, 하나는 니므롯이 세운 바벨탑의 근원이 된 바벨론 성이고, 다른 하나는 예루살렘 성입니다. 요한계시록 마지막 부분을 보면, 바벨론 성은 저주를 받고 새 예루살렘 성은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구약 시대부터 계속된 이 성경의 역사는 바벨론 성과 예루살렘 성의 전쟁의 역사였습니다. 한때는 예루살렘 성에 있는 많은 백성들이 바벨론 성으로 포로로 잡혀갔고, 예루살렘에 있던 성전의 기물까지도 바벨론 성에 빼앗겼습니다. 심지어 이름과 말과 음식과 그들의 신앙마저 빼앗겼던 이야기를 다니엘서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사탄이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여기게끔 만든 거짓 종교를 바벨론 성, 바벨탑이라고 일컫습니다. 이 거짓 종교의 창시자가 바로 니므롯으로, 그는 특이한 사냥꾼이며 세상의 처음 영걸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즉, 그는 특별한 영적인 능력을 가지고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을 막고 자기를 따라오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몇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거짓 종교와 참 신앙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보다 먼저 하나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아오려면 자기 생각, 자기 의지를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사 55:8)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에, 성경은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사 55:6~7)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생각은,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뒤로, 그냥 생각하는 것 같지만 사탄이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워하는 마음이나 음란한 마음이나 탐욕 같은 것들은 우리 속에서 정상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우리 안에 넣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을 읽어보면, 사탄이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탄이 그 생각을 넣기 전까지는 유다는 자신이 예수님을 판다는 것을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탄이 가룟 유다의 마음 안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은 때부터 그의 마음에서 예수를 팔아야겠다는 생각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자기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고 그냥 그 생각에 이끌렸지만, 그 생각을 이끌고 있었던 장본인은 사탄이었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가룟 유다를 유혹했을 뿐 아니라 오늘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을 꾀고 있습니다. 사탄이 가룟 유다를 꾀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 마음 안에도 음란한 마음이나 탐욕이나 미워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내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 내 믿음이 옳다. 내가 정말 잘 믿고 있다’라는 교만한 생각을 넣어서, 그보다 귀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역사하고 있습니다.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우리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과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우리 생각을 ‘고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생각과 다를지라도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다 해도 자기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보면 성경이 자기 생각대로 이해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시려고 하는 방향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사탄은 이것을 이용해서 성경을 읽을 때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종교적인 방향으로 이끕니다.
종교적인 방향으로 이끌림을 받는다는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도둑질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들을 읽습니다. 이런 말씀들은 우리가 들어도 좋은 이야기여서, 그것을 따라 도덕적으로 선한 삶을 지향할 때 나쁘다고 이야기할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니므롯은 사람의 영혼을 사냥할 때 인간적인 선행이나 도덕적으로 선한 삶을 추구하게 했습니다. 또, 그것을 가르침으로 자기 선 속에 빠지게 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선하고 아름답고 의롭게 하는 것을 바라볼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간 스스로는 선하게 될 수 없다고 이야기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인간 속에는 선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속에 선이 없다는 사실을 안다면 스스로 선을 행하려고 애쓰거나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앞에 나와서 “주님! 나는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주님, 당신이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며 순수하게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가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선을 부인하면, 그때 하나님의 거룩함과 의로움과 온전함이 우리 속에 임합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어서 의롭게 되는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3:10)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다른 부분을 보면 ‘의인’이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는 의인 열 명이 없어서 그 성 전체가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러니까 소돔과 고모라 성에 의인 열 명은 없었지만, 의인이 있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라고 했고, 야고보는 야고보서 5장 16절에서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 분명히 의인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 ‘의인이 어디 있느냐?’고 묻습니까? 하나님이 자기를 의롭게 하신 사실을 보지 못하고 자기가 선을 행해서 스스로 의롭게 되려고 노력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가 선하고 의롭게 되려고 노력하다가 실패했을 때 비로소 ‘아! 나는 의롭게 될 수 없구나. 나의 의로는 안 되는구나!’라는 것을 느끼고, 그 사실을 진정으로 느낀 사람은 예수님 앞에 나와 긍휼을 구해 예수님의 의를 얻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이 의롭다고 이야기했을 때, 자기 의로 의롭다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가진 의는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다’(빌 3:9)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의롭게 살아서 의로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 의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의롭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의를 주시면 우리가 의인이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종교’라는 거룩하게 보이는 이름 아래서 선하고 의롭게 살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 요구대로 의롭게 살려고 노력하다 보면 자기 의에 도취되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하는 것입니다. 니므롯이 사냥꾼이 되어서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는 방법이 바로 그런 방법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할 때 자신이 의롭게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 그것은 니므롯에게 속아서 멸망으로 가는 길입니다. 우리가 의롭게 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가서 “저는 정말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라고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예수님의 의를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결코 온전한 의를 얻을 수 없습니다.